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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하(102) 할머니

"인생 별거 없어요. 베풀며 사세요" 서연남 시민기자l승인2020.07.13l수정2020.07.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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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어요. 다 거기서 거기예요. 그냥 감사하며 많이 베풀고 사세요. 그게 제일 큰 행복이에요."

 무실동 여자 최고령 원제하(102) 할머니가 말한 인생에 대한 짧은 정의다. 적게 먹으며 꾸준히 운동해야 오래 산다는 일반적인 건강의 비결보다 우선은 '감사'와 '베풂'이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태어나 횡성군 서원면에 사는 남편을 만나 서원에서 10년 정도 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다.

 1919년 태어난 원 할머니는 원성군 흥업면 무실리였던 때부터 1973년에 무실동으로 편입돼 강원도 최대 도시로 성장하는 모습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원 할머니가 어릴 때만 해도 만대골에는 물이 많지 않아 사람이 못산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시청이 들어섰고 무실동에서 가장 번화가가 됐다. 육민관중고등학교가 건립되던 때도, 이마트가 무실동에 생겼을 때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실동에서 중앙시장과 남부시장을 한 번 나가려면 한두 시간은 걸어가야 했고 편의시설 하나 없는 곳이었다. 평생 농사지었던 원 할머니는 여름이 되면 항상 큰 대야에 상추, 고추, 복숭아 등을 담아 머리에 이고 남부시장이나 중앙시장까지 걸어가 팔았다.

 온종일 앉아서 팔면 100원을 벌었다. 당시만 해도 쌀 한 말이 30원 했을 때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 농사 중에 가장 힘든 농사를 물었다. "아이고, 콩밭 메는 게 제일 힘들었지요. 뙤약볕에서 구부리고 앉아서 호미질하려면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었죠."

 혹여 팔다가 남은 채소는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돌아왔다.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가진 게 있으면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눴고 누군가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하면 제일 먼저 쫓아간 사람도 원 할머니다. 

 학교를 가 본 적은 없다. 야학에 가고 싶었는데 친정아버지가 여자가 글을 배우면 결혼해서 힘들 때 친정에 편지 쓴다며 불호령을 내렸다. 지금도 이름 석 자 밖에 쓸 줄 모른다며 활짝 웃지만 암산만큼은 누구보다 빠르다. 시장에서 채소를 팔 때도 경로당에서 화투를 하며 계산을 할 때도 원 할머니의 계산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정도다.

 어렵게 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은 원 할머니에게도 아픔은 많았다. 6.25때 전염병으로 친정 부모를 3개월 차이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같은 해 시아버지도 눈을 감았다. 한 해에 장례식을 세 번이나 치르며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를 한 해에 다 잃은 것도 가슴 아프지만 1남 2녀의 자식 중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낳은 아들이라 더 애틋하다. 그래서 두 딸과 동네 사람들이 100세 잔치를 한다고 했을 때 손사래를 쳤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과 두 딸의 설득에 잔치를 했지만 내내 비어있는 한 자리가 가슴 아팠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들이 결혼했던 날이다. 며느리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뻤다. 아들과 잘 살아줬던 며느리가 지금도 그냥 마냥 고맙다.

 "오래 살아서 안 좋은 건 자꾸 사람들이 떠나는 거예요. 작년에 50년간 정말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던 황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땅바닥을 치며 울었죠. 11살이나 어린데도 나랑 매일 경로당도 같이 가고 친자매 같았어요."

 오랜 친구를 잃은 슬픔에 눈시울을 붉히는 원 할머니. 경로당에서 작은 돌멩이를 잔돈 삼아 화투를 쳤던 추억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80대 못지않은 건강은 물론 일상적인 대화에도 아무 문제 없을 만큼 청력도 좋은 원 할머니. 아침 6시면 일어나고 저녁 9시면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지금도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서 풀을 뽑는다. 평생 병원 한번 입원 안 하다 89세가 되던 해 위천공 수술을 받은 후 1년 뒤 다리 수술을 했었다. 고령이라 걱정됐지만, 의료진이 놀랄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20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대목수였던 남편이 1년간 손수 지은 집에서 큰 딸 최영자 씨(69)와 사는 원 할머니는 "세상 불평할 일이 뭐 있나.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면 된다"면서 "바랄 것도 없고 더 할 것도 없다"고 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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