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 아파트매매가격 중위값 (자료: 한국감정원, 단위: 천 원)

지난해 김모(43세 회사원) 씨는 1억5천만 원을 대출 받아 2억 원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 값이 1억5천만 원으로 떨어지면서 대출 상환 압박을 받고 있다.

주택 값이 2억 원이었을 때 대출이 실행된 것이므로 은행이 부채 상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목돈 마련이 어려웠던 김 씨는 결국 아파트를 처분했다. 단구동 A부동산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A부동산 관계자는 "3년 전 만해도 아파트 가격이 쉼 없이 올랐는데 최근엔 가격 하락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집값 하락으로 집을 내놓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잃어버린 20년과 유사
일본은 1980년부터 1990년까지 경제가 호황을 이뤘다. 이 기간 부동산 가치는 폭등했고 대중은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소비를 늘렸다.

그런데 1991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은행들은 앞 다퉈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채무자들은 자산을 팔아 부채 상환에 나섰고 현금 여력이 있던 사람들도 소비를 줄여 빚 청산에 애썼다.

민간소비가 줄어들자 기업들은 재고 증가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재고를 덜어내기 위해 물건 값을 낮춰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채산성 악화로 연결돼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기업 수익이 줄어드니 투자 감소·고용축소가 만연했다. 봉급생활자 임금도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일본 통계청에 의하면 일본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1991년 36만3천 엔에 달했다. 그러나 2012년엔 31만4천 엔까지 내려앉았다. 부동산 가치 급락은 결국 일본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로 귀결됐다. 일본은 1990년부터 2010년 사이를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른다.

▲ 강원도 소비자심리지수 (출처: 한국은행)

부동산 하락·소비둔화·고용축소 
원주에서도 부동산가치 하락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에 따르면 2017년 1만4천600건에 달하던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1만1천987건으로 감소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하면서 아파트 매매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 공급은 많은데 수요는 없으니 아파트 가격은 해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원주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2018년 1월 1억4천만 원을 기록했으나 지난달엔 1억2천100만 원까지 떨어졌다.

지난 2년간 원주에선 아파트값만 떨어진 게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 중 소비심리도 급하강했다. 소비자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2018년 초 110포인트를 상회했다.

하지만 1년 8개월 만에 16.3포인트가 감소해 지난 8월엔 93.7포인트까지 내려갔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포인트를 기준으로 이보다 크면 낙관적인 상황을, 이보다 작으면 비관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기업들도 고용을 축소했다. 올해 초부터 8월 말까지 원주고용복지+센터에 집계된 신규 구인인원은 7천796명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9천889명보다 2천여 명 감소한 수치다. 정부가 지급하는 실업급여도 증가했다.

지난해(1~8월) 원주권 실업급여 지급액은 345억 원이었으나 올해는 450억 원으로 증가한 것. 동화농공단지 B기업체 임원은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구조조정 기미를 보이는 업체가 늘고 있다"며 "30~40대 젊은 직원들은 정리해고 가능성에 더해 주거비 부담, 육아문제 등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통계청 발표 9월 소비자물가 (전년동월대비 증감)

▲ 통계청 발표 9월 품목별 소비자물가 (전년동월대비 증감)

"경제 어렵지만 확대해석 금물"
그러나 작금의 원주 경제가 일본이 겪은 디플레이션의 전초증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디플레이션은 통화량 축소로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원주는 건설업과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에서 전반적인 경기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생활물가지수나 신선식품물가지수도 전년대비 하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제 일부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역 경제가 디플레이션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체적인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의료기기나 자동차부품 등의 주력산업도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투자 등이 수개월째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도 지난달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