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지방자치 실시를 강력히 희망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의 핵심·필수제도가 바로 지방자치이기 때문이다. 질곡의 역사에서 보여주듯 관치시대 국민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불평등과 통제가 일상화 되던 시절을 경험했다.

 중앙정부의 일방적 지시는 여과 없이 국민들의 삶으로 녹아들었지만 그 폐해는 국민 몫이었다. 지역의 다양성과 기본적 권리와 자기결정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관리들은 지역 발전과 시민들의 입장보다 입신을 위한 자기 정치를 해야 했다. 국가 구성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은 안중에 없는 후진국형 체제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비정상 구조를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제도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열망이 컸다. 
 

 어렵게 재부활 된 지방자치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살펴보면 한마디로 미흡한 실정이다. 지방자치제도의 기본 취지는 지역의 정책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집행하며,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지방자치는 주민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에 참여하기보다는 '관'이 주도하고, 주민이 그에 순응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주민이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는 '관'이 제시하는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그 구성원들조차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도식적 제도에 매몰돼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개선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는 적극적이지 못하다.
 

 현행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상시적인 주민참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핵심조직은 주민자치위원회다. 즉 주민자치위원회의 주민자치기능이 강화돼야 지방자치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 방안으로는 첫째, 주민자치위원회에 참여하는 주민의 사회경제적 편향성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민자치에 참여하는 주민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중상위에 속한다. 소외된 주민 또는 무관심 주민을 참여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주민자치는 주민이 예산 분배권을 갖지 못하는 경우 활성화되기 어렵다. 행·재정적 권한이 없는 주민자치 운영은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구성원이 참여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산과 관련한 자주적 권한이 필요하다. 셋째, 공직자에 대한 주민자치 리더십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주민자치로 정치적 경쟁자가 발생하고, 주민의 민원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는 공무원을 교육시키는 일은 주민자치 활성화에 필수적이다.
 

 넷째. 노인과 청년의 자원 활용이다. 은퇴한 노인은 주민자치의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주민자치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한데, 은퇴한 노인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오랜 연륜에서 터득한 기량과 지혜도 갖추고 있다. 노령사회에 다가선 한국에서 주민자치의 미래를 위해 은퇴노인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또한 잠재력이 무궁한 청소년의 참여가 중요하다. 청소년은 지역발전에 기여할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보호와 시혜의 대상으로만 간주되어 왔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주민자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학습과정이다. 주민의 관점과 태도가 변하고, 주민 상호 간 주민과 정부 간에 민주적 관계와 신뢰가 쌓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지역 지도자들과 지방정부는 장기발전계획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플랜을 계획해야 한다.
 

 추상적으로 평등은 시민을 창출하지만, 실제로 평등을 가져다주는 것은 시민정신이다. 시민정신은 공동체와 자유를 체험하는 주민자치에서 함양된다. 우리는 주민자치를 정치의 출발점으로 간주해야 한다. 주민자치를 통해 '구경하는 정치'에서 '참여하는 정치'로 정치의 성격을 바꾸는 '정치혁명'을 시작해야 한다. 강력한 지방자치 작동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의 참여와 지방정부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구자열 강원도지사 정무특보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