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잖아요. 감정소모인 듯 해요."
최지형(21) 서곡생태마을 마을 활동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후회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19살에 마을 일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가 볼 땐 '딴 짓'이었지만 최 씨는 '당연한 일'이었다. 마을 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이유도 없다. 최 씨는 "그냥 집이 서곡이니까 있는 거고, 내가 사는 마을의 일이니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살아보니 정말 살기 좋은 동네라서 다른 사람도 나처럼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다섯 살 때 서곡으로 이사 와 소꿉마당어린이집, 서곡초등학교, 참꽃작은학교를 졸업한 최 씨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서곡생태마을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은 최 씨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을 고친 곳이다. 최 씨의 집은 서곡생태마을 바로 뒤편 1분 거리다.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서곡생태마을을 오갔고 어른들이 무엇인가를 할 때 늘 그 속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서곡생태마을에서 마을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2016년 19살에 마을 활동가가 된 최 씨가 처음 맡은 일은 양귀비축제 기획이었다. "양귀비축제는 마을 축제라서 학생 때도 항상 축제 준비를 같이했었는데 막상 실무자가 돼 준비하는 것을 보니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일이 많았다"며 당시의 놀라움을 전하는 최 씨. 더 놀란 것은 그냥 동네 아저씨로 알고 있었는데 축제를 앞두고 회의하는 동네 어르신들 모습이 최 씨 표현대로 하자면 '멋짐 폭발'이었다.

 단순한 행사로 생각했는데 정말 많은 고민의 연속이었고 가치 부여가 되는 것을 보며 마을에 더 끌렸다. 용수골작은음악회는 더 뭉클했다. 대안학교인 참꽃작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항상 학교 친구들과 공연을 했던 무대다. 그러다 스텝이 돼 음악회를 준비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마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일본 지바현으로 워크숍을 가게 됐는데 '자기가 살고 싶은 마을을 직접 만드는 동네 사람'을 보며 마음이 더욱 단단해졌다.
 

 올해 초에는 도시재생 아카데미도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6개월간 국제개발 NGO사단법인 캠프의 타워빌 프로젝트에 참여해 필리핀 빈민가에서 봉사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또래 친구들과의 공감이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처럼 사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그리고 숙식, 공부, 일자리 세 개가 해결되면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최 씨. 서곡에 초등학교밖에 없다 보니 졸업 즈음에는 대부분 이사를 간다.

 그때마다 '이 좋은 곳을 왜 떠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었는데 필리핀에서 해결책을 배워온 것이다. 서곡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찾아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 씨가 이렇게 마을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어릴 때부터 공동체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인 소꿉마당어린이집을 다녔고, 졸업 후 12살까지 홈스쿨을 했다. 홈스쿨은 동네 친구 포함 5명이 함께 했다. 6학년 때 서곡초등학교에 입학해 딱 1년간 정규교육을 받았고, 다시 기숙제 대안학교인 참꽃작은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마을 행사가 있을때는 항상 친구들과 공연 준비를 해서 무대에 올랐고 고사리손이라도 보태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마을 행사는 '내 일'이었던 것이다.
 

 힘들 때가 언제인지 묻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이라고 했다. 또래 친구와 공감대 형성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싶은데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최 씨는 "1년에 두 번 정도는 이 마을을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늘 이곳에 있다. 떠나지 못할 것이고 떠났다가도 돌아올 것이 서곡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밝게 웃었다. 
 

 21살이 된 2018년 여름, 최 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맞춤형 사회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일본의 사회복지를 배우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유학도 가고 싶다고 했다. "서곡은 나에게 집이다. 서곡이 있기에 우리 집도 있고 나도 있는 것이다"라며 서곡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21살의 당찬 청년.
작은 촛불 하나가 방을 밝히듯이 최 씨가 원주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데 마중물 역할을 해 줄 것이란 기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