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러울 것 없던 생활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인 어머니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2남1녀 중 외동딸인 오인숙(63) 허브이야기 대표를 금지옥엽처럼 키웠다. 결혼 생활도 순탄했다. 무역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 전처럼 걸레 한 번 빨지 않고 편안하게 살았다. 하지만 안정적이던 삶이 외줄타기를 시작하는 순간, 오 대표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이었다. 남편이 부도를 맞아 3남매를 데리고 단칸방으로 이사 가던 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1주일 동안 물만 먹은 아이들은 기운이 없어 누워만 있었다. 어떻게든 아이들과 살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 간 곳이 YWCA 살림도우미 센터였다.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설거지, 청소는 늘 살림도우미의 몫이었는데 자존심을 내세울 수 없었다. 6개월 간 일해 겨우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가 됐을 때 보육교사 자격증으로 어린이집 교사와 미대 졸업한 경력을 살려 미술 과외를 했다.
 

 하지만 수 억 원 대의 빚을 갚기는 쉽지 않았다. 운수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이삿짐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지인의 도움으로 이삿짐센터를 시작했는데 하늘이 오 대표의 간절함에 힘을 실어줬다. 철저한 고객 맞춤 서비스로 반포와 서래마을 일대에서 소문이 나면서 일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쪽 잠자며 5년 간 일만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서비스로 매출은 올랐고 빚도 어느 정도 갚았다.
 

 그렇게 한 숨 돌리는 순간, 뇌 수막 종양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이미 종양이 커져서 오른쪽 눈과 귀는 기능을 잃었다. 어렵사리 친정 오빠의 도움으로 수술을 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서울에서는 더 이상 살기 힘들어졌다. 이삿짐센터도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넘기고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하는 횡성청소년수련원 책임자로 내려왔다. 1996년이다. 33만㎡ 부지의 수련원을 관리하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5년 만에 건강은 더 악화돼 일을 그만 둬야 했다. 가난은 다시 오 대표의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먹을 것이 없어 또다시 배를 곯아야 했다. 썩은 쌀을 얻어다 밥을 해 먹는 걸 본 이웃이 원주자활을 찾아가보라고 권했다. 낯설고 힘들지만 살아야했기에 간병사업단에서 묵묵히 일을 했다.
 

 그러다 빨래방 사업반이 생기며 반장을 맡았다. 각 사업단 반장들이 선진지 견학을 갔는데 노숙자였다가 연매출 3억 원의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2005년 허브이야기를 시작했다. 횡성수련원에서 허브코디네이터 자격증도 따뒀었고, 허브를 키웠던 경험이 있어 어렵진 않았다. 650만 원을 들고 시작한 사업이 벌써 13년차다. 그 사이 2014년에는 '허브사업을 통해 자활사업단에서 자활기업으로 성장한 후 열정적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자활사업 활성화를 위한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제6대 자활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2년부터 3년간은 도내 83개 자활기업을 쫓아다니며 연합회 구성을 제안했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진심이 통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었다. 나 혼자는 못하는데 같이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판로개척을 못하는 기업이 있으면 물건을 가져와 허브이야기에 전시해 놓고 판매하기도 했고 축제마다 허브 체험 부스를 만들면 가져가서 팔았다"며 추억을 더듬는 오 대표.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지금 강원자활기업연합회는 전국 연합회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다. 지난해에는 한국자활기업협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자활기업을 하며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어긋난 시선이다. 사람들이 자활기업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도록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뛸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오 대표.
 

 허브 차는 물론 아로마 테라피 등 체험학습 프로그램 운영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지만 매일 새벽 예배를 다니는 것만은 잊지 않는다. 오 대표는 "나 하나 잘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자활기업들이 더 이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