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3월 예정지구로 지정된 지 11년 만에 준공된 원주혁신도시 전경.

봉대노인정에선 늘 쿰쿰한 냄새가 났다. 젖은 빨래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그래도 반곡동 어르신들은 이곳을 365일 찾다시피 했다. 집 다음으로 봉대노인정이 좋았다. 반곡동 제일자동차운전학원에서 운전 연습을 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운전대를 처음 잡던 기억은 오래 간다. 유만동과 마장동엔 마을 수호신 격인 서낭당이 있었다. 시내버스는 흙먼지를 날리며 좁다란 돌담길을 느릿하게 운행했다.

모두 사라진 풍경이다. 지금 그곳엔 높은 빌딩과 넓은 도로, 번듯한 음식점들로 가득하다. 원주혁신도시의 어제와 오늘이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원주혁신도시가 조성되기 전 풍경이 아득할 정도로 오래된 얘기 같다. 불과 10여 년 전인데 말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27일 원주혁신도시 전체 준공 공고를 냈다. 4단계 공정으로 진행된 가운데 4단계가 완료된 것이다. 혁신도시 특별법에 따라 2007년 3월 예정지구로 지정되며 시작됐다. 앞서 원주시 공무원들은 혁신도시를 원주로 유치하기 위해 새벽 댓바람에 수도권 공공기관을 방문,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는 유치전을 벌이기도 했다.

반곡동 일원 원주혁신도시 사업면적은 358만5천㎡이며, 사업비는 8천396억 원이 투입됐다. 계획인구는 1만2천여 세대에 3만1천명이다. 사업시행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원주시다. 2008년 3월 부지 조성공사를 시작해 작년 2월 끝냈다. 2013년 1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시작으로 12개 수도권 공공기관이 이전했다. 산림항공본부는 헬기 소음문제로 인해 지정면 판대리로 개별 이전했다.

13개 공공기관의 이전인원은 약 4천800명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내년 말까지 2청사를 신축할 계획으로, 2청사 입주 인원까지 합치면 6천여 명이 원주에서 새 삶을 살게 됐다. 대신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도 눈에 선한 고향이 그리울 땐 반곡사이버고향전시관에 게재돼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클릭해 망향을 달랜다.

 

혁신도시로 인구 몰리며 원도심 공동화

혁신도시는 국가 균형발전을 목표로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 수도권에 집중된 사람과 재화를 전국 10개 지방도시에 분산시켜 수도권의 포화 및 지방의 위축을 막자는 취지였다. 민간영역은 강제할 수 없으니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아직은 기대한 목표에 반의반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원주혁신도시 이전기관 임직원 중 가족과 동반 이주한 인원은 1천159명으로 전체의 26%였다. 나 홀로 이주한 인원은 이보다 많은 1천637명(37%)이었다. 수도권에서 출퇴근 하는 인원도 전체의 9%인 417명이나 됐다.

나 홀로 이주 및 수도권 출퇴근이 많은 이유는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를 원주로 유치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인 접근성이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치명타가 되고 있다. 주말, 휴일에는 이들의 부재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이로 인해 원주혁신도시에 업소를 낸 업주들은 고전하고 있다.

또한 원주혁신도시 조성으로 인해 원도심 공동화가 가속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원주시 인구는 1만7천500명가량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반곡관설동 인구는 2만700명 넘게 늘었다. 반곡관설동 인구 수는 2015년 7천5명, 2016년 6천144명, 2017년 4천101명 증가했다.

이전기관 임직원 입주로 인한 증가는 물론 원주시민들의 이주도 활발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재화와 사람이 몰렸듯 지역에서는 원주혁신도시가 ‘블랙홀’로 작용했다. 게다가 이편한세상아파트, 주공2단지, LH9단지 등 원주혁신도시에 아파트가 신축 중이어서 인구 유입은 계속될 전망이다. 조만간 25개 읍면동 중 인구 수 1위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다.

인구 유입이 늘면서 수도권 이전기관 외 지역 공공기관의 원주혁신도시 입주도 줄을 이었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주사무소, 원주세관비지니스센터, 동북지방통계청 원주사무소, 원주시선거관리위원회 등 5개 기관이 동반 입주한 ‘나라키움 원주청사’를 비롯해 원주지방환경청, 북부지방산림청 등이 원주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원주소방서도 원주혁신도시 인근으로 신축·이전을 추진하는 등 명실공이 공공타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지역제품 구매실적 매우 저조

혁신도시 조성사업의 큰 줄기 중 하나는 지역과의 상생이다. 원주혁신도시 이전기관도 원주의 기업체, 대학, 사회복지시설, 지역 기관들과 잇따라 상생협약을 맺고 있다. 문제는 협약식에 그칠 뿐 실질적인 협력사업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전기관 1곳 당 사회복지시설 1곳과 인연을 맺고 지원하는 1기관 1시설 자매결연은 꾸준히 이어진다.

그러나 지역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구매실적은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이전기관들이 도내 기업으로부터 물품, 용역 등을 구매한 실적은 전체의 17%에 불과했다. 지역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인증요건을 갖춘 업체도 적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전기관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 송기헌 국회의원이 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혁신도시 특별법 개정안이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할지 기대를 모은다. 오는 4월 시행 예정인 개정안은 이전기관에서 구매하려는 재화나 서비스가 이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경우 우선 구매를 촉진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전기관의 지역인재 채용률도 매우 낮다. 2014년 7.3%, 2015년 10.9%, 2016년 11.4%, 2017년 11.9%였다. 그러나 개정된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이전기관은 단계적으로 지역인재 채용률을 높여 2020년에는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달성해야 한다.

 

혁신도시 시즌2 기대

지난 2월 초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혁신도시 시즌2’는 혁신도시를 당초 목적대로 국가 균형발전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 담겼다. 원주혁신도시는 의료기기 산업기반을 활용한 맞춤형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원주시 관계자는 “원주혁신도시 준공은 하드웨어의 완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주여건 개선 및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는 지속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헬스케어 프로젝트는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전략인 셈이다.

또한 강원혁신지식산업센터 건립이 추진된다. 혁신도시 발전지원센터, 지식산업센터, 지원시설 등이 입주해 창업기업의 수도권 이전을 방지하고, 전략산업의 자립기반을 조성할 예정이다. 257억 원을 투입, 지하2층, 지상10층 규모로 짓는다. 이와 함께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원주시는 반곡도서관, 육아종합지원센터, 로컬푸드 직매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원주시 관계자는 “이전기관 임직원의 조기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원주시민과 조기에 융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