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공감, 하소연과 고발을 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고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이 갈 곳은 없었다. '아직 미성숙한 애들의 철없는 소리', 그것으로 치부되는 청소년인권, 학생인권.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어떤 문제가 있고, 왜 그것이 문제인지.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그럼에도 대다수가 침묵했을 '인권침해'라는 끔찍하고 두려운 경험. 길들여지고 무뎌지는 자신에 대한 경계와 혐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우리 스스로 모였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소속 사회참여 동아리 '행동하는 양심'과 원주시내 중·고등학교 두발 자유화 '팔레트 프로젝트'가 힘을 합쳐 자리를 만들었다. 지극히 자발적, 주체적으로. 이름하여 '강원 학생청소년 인권침해 증언대회'.
 

 도대체 학생다움, 단정함, 미성숙이 뭐길래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빼앗겨야만 하는가. 그것에 순응하면 보상받고, 저항하고 소리치면 낙인찍히고 배제되어야만 하는가. 비정상 속에서 정상을 잃지 않으려는 처절한 움직임. 머리카락, 치마 길이, 외모, 성적, 간식, 입시 모든 것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그저 하라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자유와 권리, 민주주의는 먼 나라의, 또는 책 속 이야기일 뿐이다. "안목으로 포장된, 삶의 지혜로 포장된 순종과 눈치보기를 당연하게 여기며 배워가는 저희가, 사회의 권력구조와 뇌물, 비리, 부당한 처사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길 원하십니까."라는 작은 사회에서의 증언. 본대로, 배운 대로, 눈치껏 내 주장, 의견, 목소리는 접어두고 어른이, 선생님이,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우리. 내 인권을 무시하고, 버려두고, 결국 인권 그 자체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불가피한 상황. 인권에는 나이도, 신분도, 성숙과 미성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번 인권침해 증언대회는 원주시내, 크게는 강원도 내에서 일어난 보기 드문 '청소년학생 인권움직임'이었다. "청소년 인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타이틀이었지만, 열세 명의 증언자는 "더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증언하면서도, 이후 학교로부터의 압박과 불이익이 두려워 자신을 숨긴 이들 뒤에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입조차 열 수 없는 수많은 보통청소년, 보통학생이 있다. 충격과 공포였던 이번 증언들은, 감히 청소년과 학생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의 극히 일부라고 장담한다. 그들의 증언은 일상이고, 우리의 삶이다.
 

 숨 가쁜 입시경쟁 속에서 인권을 말하기란, 교사에게 반박하고 학교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겪는 입시와 생활기록부 협박. 인권을 말하는 내가 이상하게 취급받고, 피해를 받음으로써 느끼는 절망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제게 인권은, 이제는 상처일 뿐입니다."라는 작지만 강한 인권운동가들을 위해, 현장에서의 개혁과 노력은 물론, 무관심한 언론도, 무책임한 인권단체와 교육청도 발 벗고 나설 때가 되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입을 열고, 귀를 기울이자. 치유와 공감, 하소연과 고발을 위한 '인권침해 증언대회' 따위가 다시는 열리지 않아도 괜찮도록.

서한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상임대표(대성고1)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