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중앙시장 가동에 처음으로 수선 집을 차렸을 때만 해도 이렇게 문 닫을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23㎡ 남짓 된 일광수선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면서 문전성시였다. 정창호(73) 대표와 아내는 새벽 4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11시나 돼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발 손님이 그만 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미싱 2대와 자수 기계는 쉴 틈 없이 돌아갔고 정 대표와 아내도 휴식 시간 없이 꼬박 의자에 앉아 옷 수선을 했다.
 

 주 고객은 중앙시장 1층에 있는 양품점이었다. 손님 체형에 맞게 바지 밑단이나 소매 줄이는 수선이 가장 많았다. 정 대표 부부의 꼼꼼한 손끝기술력 덕분에 중앙시장 내에서는 꽤 잘되는 수선 집으로 알려졌었다. 그렇게 10여년은 당시 돈으로 월 480만 원 정도는 거뜬히 벌었다.
 

 "여기서 아들, 딸 대학 다 보내고 결혼시켰다. 그때만 해도 중앙시장은 강원도에서 알아주는 재래시장이었다. 2층을 창고로 쓸 만큼 다들 장사가 잘됐었고 사람이 너무 많아 걸어 다닐 때 조심했어야했다"며 한 시간이 넘도록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는 가게 문 밖을 내다봤다.
 

 정 대표가 수선 집을 시작한 것은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가 취미삼아 바느질 하던 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에서 수선 집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직장생활도 하고 사업도 해봤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찾지 못했던 정 대표는 담뱃값이라도 벌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같이 했다. 원래 기계를 잘 만지고 손재주가 있어 재봉틀도 바느질도 쉽게 배웠다. 가게 이름은 고향인 부산 일광면을 따서 일광수선으로 지었다. 30년 동안 이용하는 단골 고객도 있고 20여 년 간 주변 상인들과 계를 하며 친목도 다졌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 얘기가 됐다.
 

 가게는 명절날을 빼고는 매일 출근해야할 정도로 잘됐지만 IMF가 터지면서 양품점이 하나둘씩 없어지기 시작했고 수선을 맡기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기계 시설을 잘 갖춘 수선집도 많아 옛날 재봉틀로는 경쟁할 수가 없게 됐다는 게 정 대표의 넋두리다. 설상가상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구부린 자세로 일을 하다 보니 건강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10여 년 전 아내가 스트레스로 수전증이 오고 파킨슨병을 얻으면서 가게에서 손을 뗐고 가게도 5㎡로 줄였다. 수선을 맡기고 20년 넘게 찾아가지 않는 옷도, 차마 버리지 못한 옷도 꽤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렸다.
 

 "수선을 맡기고 마음에 안 들게 됐다면서 항의하는 일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명의 손님을 만나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아내가 병을 얻은 것 같다. 이 일을 하며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정 대표. 수선한 옷을 새 옷 같다며 좋아하는 것을 볼 때면 행복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내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5년 전부터는 아침9시30분에 문을 열고 오후4시면 가게 문을 닫는다. 아내에게 저녁상을 직접 차려주기 위해서다. 내년에는 가게 문을 닫을 생각이다. 하루 2천원도 못 버는 날도 있을 정도로 경기는 점점 안 좋아지고 무엇보다 몸이 아픈 아내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비교적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수선집이다보니 지금 중앙시장 1층에만 20여개가 되고 자유시장까지 합하면 꽤 많다"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수선하는 집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처음 시작할 때 20년 된 중고 재봉틀을 사서 지금은 52년 된 재봉틀이 자신의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정 대표는 "중앙시장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중앙시장과 일광수선은 내 가족과도 같다. 다시 사람으로 꼭 북적이는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