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우리는 좀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큰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국가나 지자체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공동체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는지. 선거 전에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다 선거가 끝나면서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태도인지를.
 

 해방 이후 최근 몇 년 동안은  원주의 변화가 가장 큰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도가 바뀌고 인구가 늘고 교통도 달라지고 있다. 도시의 정체성도 크게 재조정되고 있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원래 원주는 토박이 대비 외지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었지만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생기면서는 전과는 다른 차원의 외지인 유입이 늘고 있다. 이런 도시의 변화는 토박이에게나 외지인에게나 매우 생소한 경험이다. 도농 복합도시라는 측면도 있어 도시인과 시골사람이 함께 산다.
 

 원주시의 1년 예산도 1조원을 넘어섰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건강도시, 다이내믹 원주, 인문도시, 창조도시 등 많은 예산이 투여되는 일이 실행되거나 기획되고 있다. 각각의 의도는 좋고 참신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시민 개개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졌는가, 각 사업 간의 효용과 의미가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었을까? 나날이 만들어지는 그 많은 사업들과 기획들은 도시의 다양성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영혼이 없이 만들어진 쇼를 구경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것도 있다. 
 

 원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를 이어 살아온 토박이들이나 10년이나 20년 쯤 산 어중떼기나 갓 이사온 소위 외지인에게 두루 궁굼한 질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지 않아도 전례 없는 사회구조의 변화가 진행되는 흐름이 원주라고 비껴가지는 않는다. 토박이로 살아온 분들이나 외지에서 갓 이사온 분들 모두 지역의 방관자에서 창조자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나의 욕망과 삶의 지향이 조례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1조원이나 되는 돈이 일 년마다 예산으로 집행되는데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대략이라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시의원이나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라고 골치 아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알려고 하면 너무 복잡하기만 하고 모르고 산다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임을 포기하는 일이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책처럼 원주의 지표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면 도시 전체의 흐름과 문제를 시민 대다수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원주의 공간과 인물 예산 에너지 환경 복지 같은 제반 요소들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구태의연한 관광가이드와 자본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지역 정보를 자연과 공존하는 생명의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토박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 긴 시간의 역사성을 간직한 구도심과 유형무형의 지역 가치들을 제대로 발견하지 않고 살았다. 정치인들은 개발과 성장의 틀에서 도시의 하드웨어 확장에 열을 올렸다. 새로 이사온 외지인들은 적어도 대도시와는 다른 공간을 기대하며 원주로 왔다. 혁신도시에 근무지를 둔 많은 주민들은 직장 때문에 원주에 왔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원주의 시간을 꿈꾼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함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원주는 오래전부터 창조도시를 꿈꾸며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모델로 답사도 했고 다양한 도시 기획을 하고 있다. 문화도시와 창조도시의 기본은 기획의 과정을 공유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있다. 아니 과정을 공유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자체가 문화도시의 완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살고 싶은 원주, 내가 꿈꾸는 원주가 오롯이 담겨있는 책. 원주를 친구처럼 여길 수 있는 친근한 눈높이에서 원주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높고 화려한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도시의 역사성이 살아있는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과 거기 깃들어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그런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책을 <원주사용설명서>라고 부르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