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5월 10일. '방범'이라고 쓰인 팔띠를 차고 동네 선후배들과 우산동 곳곳을 순찰하던 청년이 50을 훌쩍 넘긴 2017년 겨울에도 같은 곳에서 마을을 돌보고 있다.
 

 김학배(55) 원주시자율방범연합대 고문은 아버지가 마을 순찰을 돌고 동네 어르신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활동했던 청장년회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동네 청년이라면 누구나 회원이었고, 마을에 행사가 있거나 상갓집이 생기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일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을 봉사는 김 고문 삶의 전부가 됐다.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마을에 살고 있으니 마을 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정월대보름 마을 척사 대회가 있으면 하룻밤을 꼬박 새워 음식을 하기도 했고 매달 5천 원씩 회비를 모아 단체 티를 맞춰 입고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산동 지구대와 협조해 도둑을 잡거나 술에 취해 거리에 쓰러진 어르신을 집에 모셔다 드리는 일도 허다했다.

 순찰을 마치고 맥주 한 잔하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1~2시. 그래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재밌었다. 그렇게 25년을 살아온 김 고문은 "청장년회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게 됐는데 선후배들과 동네일을 하는 것이 재밌는 놀이였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어디서나 척척 책임감 있게 일을 잘하다보니 마을에서의 신뢰도 꽤 높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많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주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게 웬만한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는 김 고문은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살면서 몸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7년째 한 달에 한 번 태장동 와와반점 이덕용 대표와 사회복지시설을 다니며 짜장면 봉사를 하고 있는 김 고문은 2012년에는 자원봉사 500시간을 넘어 자원봉사상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대한적십자사 원주지구 중앙적십자봉사회, 원주시의용소방대, 우산동주민자치위원회 그리고 작년부터는 우산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을 맡으며 마을 일이라면 솔선수범하고 있다.
 

 김 고문이 평생 봉사하며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정경화 전 원주시자원봉사센터장이다. 원주시자율방범연합대장도 역임했던 고 정경화 센터장 얘기가 나오자 "봉사에 대한 기쁨을 알게 해 주신 분이다. 마냥 고맙고 죄송한 분"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봉사하며 어렵거나 힘들었던 기억이 없느냐고 묻자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27년째 우산동 상지대 정문 앞에서 구학닭갈비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게에 손님이 많아도 슬그머니 순찰을 나갔던 김 고문이다. 학생들이 돈이 없다고 하면 닭갈비를 공짜로 주기도 했고, 가끔 친구들끼리 싸워서 지구대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온전히 가게는 아내 김명숙씨(54)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봉사하며 행복해하는 남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이제는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다.
 

 마을 사람과 여행은 많이 가봤어도 아들 종원(27), 종현(25), 아내와 오붓한 가족 여행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올 겨울에는 네 가족 오붓하게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밝히면서도 "잘 될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나에게 봉사는 즐거움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 스승"이라고 말하는 김 고문은 7대째 우산동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로 우산초교(4회)와 원주중(29회), 육민관고(30회), 상지영서대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