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소리 없이 다녀간다. 그런 날이면 새벽부터 온 마을이 북적였다. 두툼한 외투에 빵모자, 벙어리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눈 치우는 풍경이었다.
집 안팎은 물론 동구 밖 마을길까지 동네사람들이 손을 모았다. 그럴 때면 신이 난 강아지는 눈밭을 총총거리며 뛰어다녔다. 혼자 사는 할머니집도 이웃 몫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펄펄 끓는 보리차를 건네며 고마움을 대신했다. 그땐 눈이 많이, 자주 내렸다. 싸리비와 넉가래는 김장 못지않게 중요한 겨울채비였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치우고 난 뒤 모자를 벗으면 머리에서 김이 났다. 눈 치우고 나면 어머니는 뒷마당에 파묻어둔 무의 껍질을 벗겨 건넸다. 왜 그렇게 달던지.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옛날만치 많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래도 제법 쌓일 때가 있다. 대설이었던 지난 7일에도 눈이 쌓였다. 그런데 눈 치우는 모습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주요 도로는 관리하는 관청에서 출근시간 전 눈을 처리한다. 출근길 눈 때문에 운전이 불편하면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도와 골목길이다. 눈 치우는 풍경의 실종은 뜻밖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도로에 녹은 눈이 얼어붙어 얇은 얼음층을 만드는 블랙 아이스(Black Ice)가 도처에 생기기 때문이다. 블랙 아이스로 인한 미끄럼 사고로 인적, 물적 피해가 적지 않다.
 

 자연재해대책법은 이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건축물관리자가 제설·제빙 작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책임 범위 등은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다. 원주시는 지난 2007년 '원주시 건축물관리자의 제설 및 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건축물관리자가 눈이 그친 뒤 4시간 안에 제설·제빙작업을 완료하도록 하고 있다. 밤에 눈이 내리면 다음날 정오까지 완료해야 한다. 책임 범위는 건축물 대지에 접한 보도·이면도로 및 보행자 전용도로도 포함된다. 작업에 필요한 삽, 빗자루 등 작업도구를 12월 15일부터 이듬해 3월 15일까지 비치·관리하도록 하는 등 매우 구체적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자연재해대책법 및 조례를 무시하고 있다. 상가 출입구라도 치우면 다행이다. 오죽하면 법과 조례로 정했을까 안타깝다. 눈을 치우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것도 우습다. 이 법과 조례는 처벌이 아닌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봐야 맞을 것 같다. 노인의 경우 빙판길 낙상사고는 매우 치명적이다. 그 노인이 내 부모일 수 있다. 법과 조례를 떠나 내 집 앞, 내 상가 앞 눈은 치우는 문화가 원주에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퇴근길 철물점에 들러 튼튼한 빗자루 몇 개 장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