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던 최대의 '인간승리'는 단연 대학입시와 관련된 것이었다. 입시가 끝나면 식당 파출부하며 자식을 교육시킨 홀어머니의 불어터진 손을 붙잡고 환하게 웃던 '서울대 수석입학자'의 모습이 매스컴을 장식했다. 그 감동의 장면은 '성공신화'가 되어 수많은 서민들로 하여금 현실의 고통을 잊게 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교육정책은 "하면 된다", "누구든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신화를 학생들에게 주입해왔다.

 일등지상주의 한국 사회가 현존되는 이유는 대학 졸업식 때 입었던 교복을 평생 입고 살기 때문이다. 고학벌이 주류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SKY로 상징되는 특정 명문대학 진학은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청춘들은 물론 전사회적 목표요, 로망이다. 따라서 인생의 다른 길, 다양한 가치는 용납될 수 없다. 초·중·고라는 교육제도는 오로지 대학입시에 종속되고 말았다.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초라한 신세일 뿐 교육의 목표도, 과정도 영구 실종 상태로 유지돼 왔다. 
 

 2년 전 부산의 한 초등학교 1학년이 쓴 '여덟 살의 꿈'이라는 자작시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나는 사립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이렇듯, 우리나라 청소년의 대부분은 '꿈'을 생각하기 이전에 '대학'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공부하고 있다. 60년 한국 교육의 암울한 현실이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197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딩자오중은 "내가 아는 20세기 물리학·화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 학교에서 일등 했던 사람은 없었고, 반대로 꼴찌를 했던 사람은 몇 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연구 주제를 고르거나, 자기 일생의 가장 중요한 일을 객관적 상황에 근거해서 결정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다. 인간에겐 누구나 나름의 재능이 있고 노력을 통해 이를 최대한 계발해야 한다. 그러나 분야마다 개개인의 재능 편차는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사인 볼트처럼 빨리 달리기를 원하지만 볼트의 수준 근처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분야에서건 대성공을 거두거나 큰 명성을 얻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거기에 걸맞는 노력이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학벌의 독과점에 반대하고, 서열의 유동화를 지지하며, 경쟁의 합리화를 주장해 왔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절망의 심리에서 비롯된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극단주의적 발상이다. 역대 정권은 보수든 진보든 양단적 선택의 갈림길로 청춘들을 내몰았다. 그 방법이 다름에도 고통은 늘 청춘들의 몫이었다. 이제는 긍정, 낙관, 중용이 바탕이 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도 존중되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만족하고 그래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사흘 후면 60만 명이 넘는 청춘들이 각자의 신화를 꿈꾸며 입시전쟁을 치룬다. 과거나 현재나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는 단판 승부다. 유난히도 추운 그 하루가 전 인격과 인생을 좌우한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특권층의 타락, 상대적 빈부의 차이를 젊음의 가치로 넘어서려는 다수의 청춘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춘들의 '행복 꼴찌'를 방치한 기성세대로서 이들에게 용서를 바라며 한 마디 전한다. '미안하다 청춘들! 자 그래도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