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삼록 씨의 '아미타상현좌불

전승의 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진 '건칠불(乾漆佛)'이 한 공예가의 집념에 의해 700년만에 재현돼 주목을 받고 있다.

'건칠불'은 종이나 삼베로 만든 불상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삼베나 종이로 감싸고 옻칠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한 뒤 단단히 반죽한 옻칠로 세부를 표현해 마무리 한다.

나무를 깎거나 금속을 틀에 부어 만드는 불상보다 훨씬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다. 특히 다른 재질의 불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벼워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 어렵지 않게 대피시킬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유행했는데 경주 기림사와 영덕 장륙사의 건칠보살반가상은 특히 삼베가 아닌 종이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륙사 것은 조선 태조 4년(1395), 기림사 것은 연산군 7년(1501)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제작 기록이 남아있질 않다. 근대 들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학술적인 연구만 있었을 뿐 제작 방법은 전승의 맥이 끊긴 것으로 전해져 왔다. 

건칠불을 현재에 되살린 주인공은 옻칠공예가 오삼록(53) 씨. 지난 2008년 옻칠공예 단일대전으론 국내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한국옻칠공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은 그는 최근 건칠기법으로 제작한 '아미타상현좌불상'을 제40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해 장려상을 수상했다.

오 씨가 건칠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여년 전이다. 한지공예가인 아내 정순교(46) 씨의 스승인 상기호 선생이 제23회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지불(紙佛)'을 보고 건칠불 연구에 뛰어들었다.

10여년의 자료 조사 후 3년 전부터는 본격적인 제작에 매달렸다. 흙으로 형태를 잡고 삼베바르기와 옻칠을 10여회 반복한 뒤 형태를 굳혀 흙과 목심뼈대를 제거하고 다시 목칠분과 옻칠하기를 반복하면서 세부조각에 임했다.

여기에 다시 옻칠을 하고 개금을 해야하는 오랜 공정이다. 불상의 수인(손) 역시 건칠로 따로 제작해 고정했으며, 두상 나발은 목심에 삼베를 감아 소라뿔 형태로 하나하나 만들고 두상에 홈을 파내 토회칠로 고정한 후 다시 옻칠을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스스로도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어서 시행착오를 여러번 거치면서 탑을 쌓아가 듯 하나하나 깨우치며 공부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만큼 실패와 재도전의 연속인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오 씨의 '아미타상현좌불상'은 탈활건칠법(脫活乾漆法)으로 고려시대 건칠불을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지로 제작된 기림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이 1501년에 조성됐다는 기록을 감안할 때, 최소 600~700년만의 재현이라는 게 관련 인사들의 설명이다.     

오 씨는 "많은 어려움 끝에 완성한 작품이라 기쁨이 더 크다"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여유가 되는 한 건칠불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오 씨의 작품은 오는 27일까지 서울 선정릉 앞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