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의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다. 원주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국민이 낸 세금을 올바르게 사용하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의회에서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거스르고 있는 게 있다. 지난 2008년 수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본회의장에 설치한 전자투표 시스템이다. 지난 5대 의회에서 2회 사용했으며, 이번 6대 의회 들어서는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수천만원의 세금이 고스란히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무용지물로 방치할 바에야 전자투표 시스템을 애초에 도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전자투표 시스템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지난 2월 김병석 의원은 전자표결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원주시의회 회의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3월 열린 의회운영위원회에서 막혔다.

운영위 소속 의원들간 찬반 논란이 일자 향후 논의하자는 취지로 계류시킨 것이었다. 계류된 안건은 운영위 스스로 상정해야만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운영위 소속 의원들의 의지에 개정안의 운명이 달려있는 셈이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목적은 의회에서 찬반을 결정할 때 전자투표에 의한 기명표결을 원칙으로 하도록 투표방식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전자투표 시스템에서도 무기명 투표를 할 수 있고, 전자투표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현행 회의규칙에 따라 거수나 기립과 같은 방식으로 기명투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무능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전자투표 시스템을 묵혀두며 시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상황이어서 전자투표 시스템을 통한 기명투표를 하자는 취지였다. 기명투표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찬반이 민감한 안건에 본인의 표심이 드러날 경우 반대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신결정을 위해 기명투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1일 의회에서 부결된 '원주시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꼽을 수 있다. 개발행위 허가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개정안은 환경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의 공분을 사면서 기명투표 논란을 불러왔다. 무기명투표로 진행됐어도 부결되긴 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의원은 지역주민을 대표해 심의·표결에 참가한다는 점에서 의원 개개인의 표심은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 미래에 영향을 주는 현재의 결정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설령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오해를 사는 일이 있더라도 선출직 의원이 감당할 몫이다.

이를 통해 책임정치 구현은 물론 의정활동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심의·표결 등 정치적인 행위에 관해 유권자가 다음 선거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만 책임정치가 구현될 수 있다.

의회는 최근 '원주시의회 업무추진비 사용 및 공개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 전국 광역·기초의회 중 13번째로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기로 했다. 과감하게 업무추진비 공개를 결정한 용기가 회의규칙 개정을 통한 기명투표 도입에도 발휘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