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론면에서 농사를 짓는 P 씨는 올해 초 농산물 유통업자와 옥수수 3천㎡에 대한 계약재배로 700만원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수확을 앞두고 유통업자는 장마로 인해 옥수수 값이 하락했다며 P 씨에게 400만원 밖에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미 옥수수밭 임대료와 비료 등 농자재 구입에 모두 500만원이 들어갔기 때문에 P 씨는 계약을 해지했다. 그런데 새로운 유통업자는 350만원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처음 계약한 유통업자보다 오히려 금액이 떨어졌지만 옥수수는 수확을 미룰 수 없는 작물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통업자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유통업자는 옥수수를 수확하면서 품질이 떨어진다며 50만원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 옥수수를 넘긴 뒤 추가로 50만원을 더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손에 쥔 건 250만원 뿐이었다. P 씨는 "소송이라도 제기하고 싶었지만 화병이 생길 것 같아 포기했다"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K 씨의 경우엔 더욱 억울한 일을 겪었다. 300㎡의 옥수수 밭을 20만원에 넘긴 것. 20만원에 넘기지 않으면 사지 않겠다는 유통업자의 배짱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이 마을에 사는 20여 농가는 약 10만㎡ 밭에서 옥수수를 계약재배했지만 계약서 약정대로 돈을 받은 농가는 전혀 없었다. 밭떼기로 불리는 계약재배는 농민과 유통업자간 사전에 계약을 맺고 돈을 받는 방식이다. 높은 수익이 나거나 아니면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계약을 물릴 수는 없다. 판로에 어두운 농민들이 가장 손쉽게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유통업자들은 농민들의 이러한 약점을 악용, 헐값에 농산물을 사가는 실정이다. 수확기에 유통업자들이 깎아달라고 배짱을 부리면 농민들은 고스란히 당하고 만다. 헐값에라도 넘기지 않으면 자식 같은 농산물을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P 씨의 경우 1차로 계약을 한 유통업자를 상대로 계약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변호사 선임비용과 복잡한 절차로 인해 사실상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이재구 변호사는 "농작물 계약재배의 약점을 악용하는 중간상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농가가 늘고 있다"며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며, 이행보증증권을 받아 놓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P 씨는 "판로가 없기 때문에 농촌에서 계약재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지역농협이나 원주시에서 계약서 작성요령과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등에 관한 농민 교육을 실시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