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각 채화칠기 과반. 나전을 쓰지 않고 칠에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리는 칠화칠기 기법의 대표작이다.

원주 옻칠공예의 중흥을 일으킨 일사 김봉룡 선생의 유작과 유품이 원주로 돌아온다.

원주역사박물관(관장: 박종수)은 한국 전통 나전칠기에 일대혁신을 일으킨 선생의 유작 10여점을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유족으로부터 매도의사를 확인했으며 선생이 사용하던 유품을 원주시에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고 덧붙였다.

원주역사박물관이 구입하는 선생의 유작 중에는 전통 칠화칠기 기법을 되살린 '팔각 채화칠기 과반'을 비롯해 '공작무늬 나전 칠 서류함'과 '도태장초문 나전칠화병' 등 원주에서 제작된 대표작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 도태장초문 나전칠화병.

이중 '팔각 채화칠기 과반'은 나전을 쓰지않고 칠에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한 칠화칠기 기법의 대표작이다.

채화칠기로도 불리는 칠화칠기는 신라 천마총과 백제 무녕왕릉 등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같은 기법을 확인할 수 있을뿐 고려 이후 유물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단절된 기법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 선생의 손으로 복원된 후 현재는 그 제자인 양유전 선생 등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통영이 나전칠기의 대표성을 갖는다면 칠화칠기는 원주가 근본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공작무늬 나전 칠 서류함'은 1975년 방한한 미국 존슨대통령에게 선물로 증정한 것과 같은 작품이다.

당시 청와대 요청으로 제작한 두 점 중 한 점을 청와대가 사들여 존슨대통령에 선물했으며 현재 미국 존슨 대통령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주로 오는 작품은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남은 한 점으로 존슨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과 함께 만들어졌다.

'도태장초문 나전칠화병'은 문광부가 한국미술오천년이란 타이틀로 미국순회 전시를 기획했을 당시 한국 나전칠기의 대표작으로 소개된 작품으로, 한국 나전칠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 공작무늬 나전 칠 서류함,

원주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유작 매입 및 유품 기증은 지난 8월부터 추진됐다. 통영에서 열린 나전칠기 관련 심포지움에서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소장하고 있는 유작을 매도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한 것이 시작이다.

마침 선생의 고향인 통영시가 선생이 부소장으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했던 옛 경남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을 매입해 선생의 기념관 및 나전칠기 전시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유작매입은 더욱 발 빠르게 진행됐다.

박종수 원주역사박물관장이 유족이 살고있는 대전 자택까지 찾아가 협의를 진행했고 그 노력의 결실로 최근 원주를 방문한 선생의 장남 김옥환 씨로부터 "소장하고 있는 유작을 원주시에 매각하고 보관중인 부친의 유품을 함께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선생이 남긴 유작의 가치와 원주로 가져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높이 산 시의회도 내년 본예산을 심의하면서 역사박물관 유물구입비를 1억원 증액하며 힘을 보탰다.

박 관장은 "선생의 고향인 통영시가 기념관과 전시관 건립을 추진중인 것을 알게된 후 자칫 하다가는 선생의 유작을 원주로 가져오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었다"며 "원주가 '옻칠의 고장'이라 불릴 수 있도록 옻칠공예를 중흥시킨 선생의 유작을 원주로 가져올 수 있게 돼 세계 최고의 옻칠산지인 원주의 도시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고 김봉룡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 원주역사박물관)

일사 김봉룡 선생
원주 옻칠 중흥 이끈 장본인

원주 옻공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고 김봉룡(1902∼1994년) 선생이다. 선생은 1968년 고향 통영을 떠나 질 좋은 원주 옻을 찾아 태장동에 정착한 후 원주에서 전통 칠기를 새롭게 꽃 피웠다.

17세에 경남 통영시에서 나전칠기에 입문한 선생은 이후 평생을 전통적인 나전칠기 기법을 고수하면서 작품제작에 온 힘을 기울였다.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장식품박람회에서 은상을 받았으며, 1950년대부터 통영시에 세운 나전칠기강습소를 맡아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당시 유행하던 화학성 칠기를 사용하지 않고, 1968년부터 옻칠의 주산지인 원주에서 나전칠기와 칠화칠기의 전통적인 맥을 잇는 데 주력했다.

세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는 질좋은 옻이 생산돼 '옻칠의 고장'이라 불리지만 선생이 오기 전까지 원주에서는 옻칠공예나 나전칠기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태장1동 가매기 인근에 밀집했던 상공장에서 옻칠을 한 소반을 만들어 내던 것이 원주 옻칠기의 전부였다. 당시 지역 유지들이 설립한 원주칠공예주식회사의 공예부장으로 원주와 인연을 맺은 선생은 이형만, 양유전 선생 등 원주 옻칠을 대표하는 장인들을 길러내며 원주 옻칠공예를 발전시켰다.

선생은 한국나전칠기계에 일대혁신을 일으킨 주인공으로도 손꼽힌다. 이전의 전통 나전칠기 기법은 선이 거칠고 투박했으며 문양도 사군자(四君子)·십장생(十長生)·당초문(唐草文) 일색으로 거의 빈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선생의 나전칠기 기법은 간결하며 대담하리만큼 빈 공간이 많고 당초문양의 잎새 엉클어짐은 가히 천하일품이라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선생의 제자이자 칠화칠기의 맥을 잇고있는 소하 양유전 선생은 선생을 "한국을 대표하는 나전칠기의 대가, 거장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며 "선생의 작품을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지금도 그 분의 실력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누구보다 옻칠에 애정이 깊었던 분으로 선생을 기억하는 양 선생은 "자신만이 아니라 어떻게 주변을 도울 수 있을까 늘 고민했었다"면서 "그 때문에 오해도 받고 고초를 겪기도 하셨지만 평생 성품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