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재 쌍룡중 교사

풍요로운 삶을 누린 양반과 중인

"하늘이 백성을 낳음에 그 백성이 넷이다. 그중 가장 귀한 자는 양반이다. 양반이라고 일컬으면 그 이익이 막대하니 밭 갈지 아니하고 장사하지 않는다. 양반이 이웃의 소를 가져다 먼저 밭 갈고 마을사람들을 불러다 김을 매도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박지원의 양반전)

양반은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관리가 된 양반은 관직의 높낮이에 따라 녹봉과 토지를 받았다. 대토지를 소유한 양반은 중앙과 지방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온갖 특권을 누렸다.

중인은 관청에서 행정실무를 담당하거나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있던 하급관리였다. 중앙 관청에서 일하는 서리, 지방관청에서 일하는 향리, 전문적인 기술관인 역관(통역관), 의관(의사), 율관(법률가), 지관(천문지리학자), 화원(화가) 등이 여기에 속했다. 요즘 소위 잘나간다는 전문직이 조선시대에는 중인이었다.

사람대접 받지 못한 상민과 천민

일반 백성인 상민은 평민, 양민으로 불리었는데 농민, 수공업자, 상인들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농민들은 언제나 많은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일종의 토지세인 전세는 관리들의 농간으로 정해진 양보다 훨씬 더 많았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에 가야하고, 성을 쌓거나 둑을 쌓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그래서 농민은 어려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농토를 넓히고 농사법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세금을 피하기 위해 도망하여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기도 했고 유랑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회적 차별 온몸으로 경험한 송관수
진주서 백정해방 운동인 형평운동 시작

천민은 최하층 신분으로 대부분 노비였다. 최참판댁에는 많은 노비가 있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나갔다. 침모 봉순네는 계절마다 옷을 지었으며, 찬모 연이네는 부엌에서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김서방은 마름으로 최참판댁의 토지를 관리했으며, 몸종 귀녀는 최치수의 몸시중을 들었고 바우, 길상, 삼수, 삼월이, 수동이는 최참판댁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다.
　
"이 미친년아, 와 무당 문전에 떨어졌더노! 미친년아. 에미 근본 모르는 데 가서 니나 팔자치리하고 살아라. 오르지 못할 낭구 치다보지도 말라캤다. 나이 많으믄 어떻노? 다리 병신이믄 어떻노?" (토지 1권 234쪽)

이용을 사랑하지만 신분적 한계로 말미암아 결국 스무 살이나 많고 다리병신인 봇짐장수에게 시집 간 무당 딸 월선은 또 다른 천민이었다.

허상안은 외친다. "이 백정놈아! 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왔노. 다리 뻬가지 뿌러지기 전에 나가!" (토지 9권 187쪽)

백정은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던 신분으로 도살업에 종사하였다. 백정의 딸과 결혼한 송관수는 백정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백정의 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을 진주에서 시작한다. 갑오개혁과 형평운동 등 여러 개혁을 거치면서 조선의 신분제도는 해체되어 갔다.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제 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다음 강의는 5월 7일 오후5시 '간도의 독립전쟁'을 주제로 횡성여고 변창수 교사가 강의합니다. 강의록 원본은 원주투데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토지 등장인물의 신분과 조선의 신분제도

쌍룡중학교 교사 강희재

1. 들어가기

“하늘이 백성을 낳음에 그 백성이 넷이다. 그중 가장 귀한 자는 양반이다. 양반이라고 일컬으면 그 이익이 막대하니 밭 갈지 아니하고 장사하지 않는다. 약간의 공부를 하여 잘하면 과거에 급제하고 적어도 진사가 된다. 문과의 홍패(과거 합격증)는 길이가 2자에 지나지 않으나 말 그대로 돈자루라 하겠다. <…>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이웃의 소를 가져다 먼저 밭 갈고 마을사람들을 불러다 김을 매도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 (박지원의 양반전)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조선 시대 사람들을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으로 나누었다. 양인은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는 등 여러 가지 의무를 지는 대신에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자유인이었다. 천인은 의무는 물론 권리도 없는 비자유인으로 국가나 개인에게 소속되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해야 했다. 조선 초기 양인, 천인의 두 신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네 신분으로 분화되어 갔다.

양반은 본래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점차 상위 지배층을 의미하는 하나의 신분층으로 굳어져 갔다. 또한 양반 관리를 보좌하던 하급관리와 기술관리들도 중인 신분으로 정착되었다. 이로서 양반과 중인이 지배계층이 되었으며, 농민 상민 수공업자 등으로 구성된 상민과 천민은 피지배계층이 되는 신분질서가 확립되었다.

2. 양반 - 풍요로운 삶을 누리다.

토지』주인공 서희의 집안을 최참판댁이라 부른다. 서희의 조상 중에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차관인 참판은 어떻게 될까? 고려시대에는 ‘음서제’ 라고 하여 아버지를 잘 만나면 될 수도 있었지만 조선시대에서는 원칙적으로 과거라는 일종의 국가 선발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양반은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관리가 된 양반은 관직의 높낮이에 따라 녹봉과 토지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지를 세습하여 대토지를 소유한 양반은 중앙과 지방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온갖 특권을 누렸다.

늦은 점심때쯤 윤씨부인 일행은 죽림골에 당도하여 그곳 마름의 집으로 들어갔다.

(윤씨부인) “고단하냐?” (서희) “아니옵니다.”

“농사꾼들은 우리가 타고 온 그 길을 노상 걸어다니지. 앞으로 며칠을 더 다닐 것이다. 너의 땅을 눈여겨 보아두어야 하느니라.” “예” (토지 1부 3권 제3편 17장 <서희의 출타>, 나남출판 3권 126쪽)

윤씨부인이 서희에게 물려줄 땅을 확인시키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땅을 확인하는데 며칠이 걸릴 정도로 양반집의 땅은 넓었다. 양반들은 농토를 노비에게 경작시켰는데 농민에게도 경작하게 하여 수확량의 1/2 정도를 받았다. 퇴계 이황은 약 1,000마지기(논 1마지기는 약 600~700㎡)의 토지를 소유하였는데 이는 당시 양반의 중간 수준 규모였다.

토지와 함께 양반의 주요 재산은 노비였다. 노비는 양반의 일상생활과 농업 경영에서 꼭 필요한 도구였다. 퇴계 이황의 경우 남자 종 203명, 여자 종 164명 등 총 367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매매와 상속의 대상이었다.

김진사댁, 그러니까 과부 며느리의 시할머니 되는 사람이 젊었을 시절 어떤 젊은이가 양반댁 아씨 거처방 앞을 야밤에 지나갔다 하여 당산나무에 매달려 사형(私刑)을 당하는 광경을 수동이는 본 일이 있었다. 억울하다고 외치다가 외치다가 사나이는 결국 혀를 물고 죽었다. 죽이는 일은 흔치 않았으나 죄과에 따라서 나무에 매달아 매질하는 것은 흔히 있는 마을의 사법(私法)이었다. (토지 1부 2권 제2편 18장 <초록은 동색>, 나남출판 2권 191쪽)

조선시대 양반의 권위는 대단하였다. 양반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았다. 양반은 향약이라는 마을의 법을 만들어 유교에 바탕을 둔 양반 중심의 마을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이황이 1556년에 만든 안동 예안마을의 법(예안향약)에는 28조항의 처벌 대상자를 규정하고 있는데 ‘수절한 과부를 더럽힌 자’는 가장 엄한 처벌인 ‘극벌’에 해당하였다. 극벌은 ‘부모에게 불손한 자’와 ‘마을 어른을 욕보인 자’ ‘형제가 서로 싸우는 자’와 같이 삼강오륜의 도덕 규범을 어지럽히는 마을의 상민과 노비를 대상으로 함으로서 양반 중심의 마을 질서를 강화할 수 있었다.

양반댁 아씨 거처방 앞을 야밤에 지나간 사나이는 양반 중심의 마을 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합법적 절차도 없이 매를 맞았고 나무에 매달려 죽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양반의 권위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김훈장이 볼 때 김진사댁 두 과부가 수절하면서 무사히(?) 지내기에 세상은 너무 혼탁해져 있었다. 마지못해 김훈장은 마을 남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두 과부가 마목(문둥병)에 걸렸다고 거짓 소문을 내야만 했다. (토지 3권 83쪽)

조선 후기 경제적으로 성장한 상민계급이 사회적으로 진출하면서 양반의 독점권은 어느 정도 약화되어갔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질서는 여전했던 것 같다.

3. 중인 - 전문기술직과 하급관리가 되다.

조선시대 지배계층으로 양반 바로 밑에 중인이 있었다. 중인은 관청에서 행정실무를 담당하거나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있던 하급관리였다. 중앙 관청에서 일하는 서리, 지방관청에서 일하는 향리, 전문적인 기술관인 역관(통역관), 의관(의사), 율관(법률가), 지관(천문지리학자), 화원(화가) 등이 중인에 속했다. 요즘 소위 잘나간다는 전문직이 조선시대에는 중인이었고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방도 지방의 말단 관리로서 역시 중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해 사역원에서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위구르어, 류큐어 등 6개 언어를 가르쳤다. 이들은 기술관을 뽑는 과거시험인 잡과의 역과를 치루고 역관이 되어 외국에 사신을 따라가거나 외국사신이 방문했을 때 통역을 하는 등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통역을 하면서 선진 외국 문물을 접하게 된 역관 중에는 개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진보적인 인물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일부 역관은 외국을 왕래하면서 밀무역에 손을 대어 많은 이익을 남기는 등 조선 후기 대외 무역활동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는데 임역관이 그러한 경우이다. 임명빈과 임명희의 아버지인 임덕구(임역관)는 중인출신의 역관으로 많은 돈을 벌어 아들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는 등 부유한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토지 6권 244쪽)

최치수 집안의 주치의이며 마을의 의원(의사)였던 문의원도 중인신분이었다. 그는 토지 등장인물 중에서 시대를 보는 안목이 가장 정확하고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중인출신 문의원은 동학을 ‘이 나라의 마지막 힘’으로 보고 상민의 역할을 인정하였던 점에서 최치수 보다 진보적이었으며, 서양에 대해 문을 열고 개화를 해야 함을 역설한 점에서 김훈장보다 개혁적인 인물이었다.(토지 2권 125)

해도사도 중인이었다. 그와 할아버지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좋은 묘자리나 집터를 잡아주는 이름난 지관으로 살림이 부유한 중인출신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을 두어 천문, 지리학을 공부시킨 후 잡과시험인 음양과를 통해 천문학자, 지리학자를 뽑았다.

소실(첩)을 꿈꾸며 조준구에게 몸을 허락한 삼월이는 조준구에게 버림받고 삼수에게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최참판댁 노비였다. 삼월이의 희망대로 조준구의 소실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면 그 아들의 신분은 무엇이 될까?

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의 자식을 서얼이라 한다. 서얼은 양반의 자손으로 넓은 의미의 중인신분에 속했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면 서자는 양반과 양첩(양인첩) 사이의 아들로서 양인의 신분을, 얼자는 양반과 천첩(천인첩) 사이의 아들로서 천민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으로 부르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장면이 바로 서얼들의 신분적인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민에게 조차 열려있던 과거시험의 자격이 서얼에게는 주어지 않았으며 관직의 승진에도 제한이 많았기 때문에 서얼들의 저항이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다.

4. 상민 - 생산을 담당하다.

일반 백성인 상민은 평민, 양민으로 불리었는데 농민, 수공업자, 상인들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조선은 이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각종 세금으로 국가 재정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국가경제의 핵심인 상민의 생활안정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다.

상민은 국가에 대하여 전세, 역, 공납의 의무를 졌다. 또한 조선은 유교적인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상민층은 국가 운영의 근본이었다. 애민정신이나 민본사상은 상민층에 대하여 국가가 지켜야할 덕목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상민은 피지배층이고 수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동진) “상민이 부러울 때가 있지. 하나를 알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 상민들의 우직함이 부러워. 그들은 적을 만났을 때 잽싸고 교활하고 용감하거든. 삼강오륜의 법은 몰라도 그들은 뭐가 옳고 그른가를, 무엇을 막아야 하고 무엇을 몰아내야 하는가를 심장으로 느끼거든.

(최치수) “비겁하고 천한 것들이 옳고 그르고를 알어? 용감하고 잽싸고 심장으로 느껴? 흥, 혼자 일어서서 저도 당당한 인간임을 과시하고 양반한테 대항해오는 놈이 있다면 내 천석쯤 떼어주지.”

(토지 1부 2권 제3편 4장 <섬진강 나루터>, 나남출판 2권 317쪽)

상민은 법적으로 양인에 속하였기 때문에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으나 교육을 받을 기회와 시간과 비용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웠다. 상민의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양반의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럴 경우 생산량의 절반을 양반에게 주어야 했기 때문에 농민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의 최대 희망은 자기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김이평(두만 아비)은 최참판댁의 노비였으나 할아버지대부터 천민을 면하고 최참판댁 땅을 부치며 살고 있었다. 그는 둘째 아들 영만을 간난 할멈에게 양자로 주고 논 다섯 마지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최참판댁을 습격할 때 끼지 않고 도피하였는데 이 일로 평생 죄의식 속에 살아간다. 동료를 배신하게 했던 논 다섯마지기… .

내 땅을 갖고 싶은 농민의 바람은 거의 본능이었다. 그렇기에 김이평의 행동을 비난하지 못하는 것이다. 칠성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벌써부터 칠성이가 부쳐먹던 최참판댁 땅을 누가 얻을 것인지 그것에 관심이 쏠려있었다.(토지 3권 17쪽)

저녁에 여자들은 함안댁의 경우처럼 베짜기를 했으며, 남자들은 짚으로 자신들의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농민들은 언제나 많은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일종의 토지세인 전세는 관리들의 농간으로 정해진 양보다 훨씬 더 많이 내야했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에 가야하고, 성을 쌓거나 둑을 쌓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어야 했다.

지역의 특산물을 납부하는 공납이 있었는데 탐관오리가 이를 악용하여 추가로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에 농민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농민들은 어려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농토를 넓히고 농사법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이도 어려워 세금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도망하여 화전민이 되기도 했고, 유랑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칠성이) “용이이 ― 장에 안 갈 건가 ― ”
용이는 닭 두 마리를 망태 속에 잡아넣고 망태를 어깨에 걸머졌다.
(윤보) “장에 가거들랑 미역 한 손 사다도라. 돈은 갔다오믄 줄기니.”
와글와글하는 장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죽을 먹던 봉기가 그들을 보고 웃는다.
“떡 사소! 떡, 시월 상달 개피떡 못 사묵으면…”
“떠리미요, 떠리미! 몽땅 개값으로 던지고 갈라누마…”

깡마른 늙은 방물장사였다. 이 장에서 저 장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면서 지난해도, 아마 십년 전에도 그랬으리라.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때묻은 잡화를 펴놓고 그는 떠들어댈 것이다.

칠성은 자루 없는 낫과 괭이를 새끼에 묶어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장터에서 빠져나와 삼거리 주막으로 들어섰다.

주모 월선이 물었다. “참판님댁 마님은 안녕하시오”

(토지 제1부 1권 제1편 5장 <장날>, 나남출판 1권 98~112)

용이가 닭을 내다 팔고, 윤보가 미역을 사고, 칠성이 낫과 괭이를 사고, 봉기가 떡을 사먹는 곳이 장시이다. 장시는 월선이 참판댁 안무를 묻듯이 마을과 나라의 정보가 모이고 여론이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5일 마다 장이 서는 이곳에서 벌써 몇 년째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는 방물장수는 장시의 주인공인 보부상이다. 보부상은 봇짐장수(보상)와 등짐장수(부상)를 함께 이르는 말로 장이 서는 마을을 돌아다난다고 하여 장돌뱅이라 불렸으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상인이며 조선 전통상업의 중심축이었다.

월선네 주막 근처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옥서방과 목수 윤보는 대표적인 수공업자이다. 그들은 공장으로 불리며 일정기간 동안 관청에 소속되어 의류, 무기, 문방구 등을 만들었고 그 외의 시간에는 그릇, 농기구, 양반의 사치품들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들이 만든 수공업품과 함께 농산물, 각지의 특산물들은 5일 마다 열리는 장날에 장시에서 보부상들에 의해 판매되었는데 장시는 16세기 후반에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조선에서는 수공업이나 상업보다 농업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수공업자와 상인은 농민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으며 농민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공장세, 상세 등의 세금을 납부하였다.

5. 천민 -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다.

천민은 최하층 신분으로 대부분 노비였다. 노비는 소나 말처럼 마음대로 사고팔며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살펴보자

천민은 본래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데, 천민이 양인의 아내를 맞이하여 낳은 자식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른다. <…> 무릇 노비의 매매는 관청에 신고해야 하며, 사사로이 몰래 사고팔았을 때는 관청에서 노비와 대가로 받은 물건을 모두 몰수한다. 나이 16세 이상 50세 이하의 노비는 값이 저화(종이 돈) 4,000장(면포 200필)이고 15세 이하 50세 이상은 3,000장이다. (경국대전)

노비는 법적으로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노비이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일부 양반은 자신의 노비를 상민과 결혼시켜 그 자식을 자신의 노비로 만드는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노비는 좋은 말 한 마리의 값보다 싼 가격이었다.

개인이 소유한 노비는 주로 주인집의 행랑채에 거주하면서 농사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하여야 했는데 이들을 솔거노비라고 한다. 노비 가운데 일부는 주인과 떨어져 독립된 생활을 하며 주인에게 신공(身貢:주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몸값)을 바치는 외거노비도 있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재산을 모아 양인으로 신분이 상승되는 경우도 있었다. 외거노비로 신분을 상승시킨 예로 김이평(두만 아비)이 있는데 그는 할아버지대에 외거노비로 있다가 노비에서 면하여 농민이 된 경우였다.

최참판댁에도 많은 노비가 있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나갔다. 침모 봉순네는 계절마다 옷을 지었으며, 찬모 연이네는 부엌에서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김서방은 마름으로 최참판댁의 토지를 관리했으며, 몸종 귀녀는 최치수의 몸시중을 들었고, 바우, 길상, 삼수, 삼월이, 수동이는 최참판댁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다.

밧줄에 묶인 삼수는 반죽음이 되게 맞았다. “내가 우짜다가 으흐흐흐 <…> 두고보자, 이눔으 새끼들!” 삼수는 거듭 복수를 다짐하였다.

(토지 제1부 3권 제4편 13장 <흉년>, 나남출판 3권 364쪽)

별당아씨의 부정을 홍씨에게 일러바치다 들켜, 10살짜리 상전인 서희에게 채찍으로 맞는 치욕을 당한 노비 삼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조준구가 득세하자 삼수는 그의 편이 되어 신분 상승을 꿈꾸며 최참판댁에 복수하여 결국 최참판댁을 몰락시키게 된다.

“퇴!” “아니!” 귀녀가 소리를 질렀다.

삼월이에게 업혔던 서희가 귀녀 얼굴에 침을 뱉었던 것이다. 귀녀는 치맛자락을 걷어 급히 얼굴을 닦는다.

(토지 1부 1권 제1편 4장 <수수께끼>, 나남출판 1권 93쪽)

어린 서희에게 모욕을 당한 노비 귀녀는 ‘한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원한과 저주의 눈길’로 양반에 대한 원한과 복수를 감행하고 신분 상승을 꾀하다가 파멸에 이른다.

“이 미친년아, 와 무당 문전에 떨어졌더노! 미친년아. 에미 근본 모르는 데 가서 니나 팔자치리하고 살아라. 오르지 못할 낭구 치다보지도 말라캤다. 나이 많으믄 어떻노? 다리 병신이믄 어떻노?”

(토지 1부 1권 제1편 13장 <괴로운 환희>, 나남출판 1권 234쪽)

이용을 사랑하지만 신분적 한계로 말미암아 결국 스무 살이나 많고 다리병신인 봇짐장수에게 시집 간 무당 딸 월선은 또 다른 천민이었다.

허상안은 외친다. “백정놈하고 함께 술을 마실 수 없소!” 석이와 관수가 동시에 얼굴을 돌린다. “이놈아! 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왔노. 모리고 왔나? 다리 뻬가지 뿌러지기 전에 나가!”

(토지 제3부 1권 제1편 10장 <허기지고 고독한 승리>, 나남출판 9권 187쪽)

토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천민으로 기생과 백정이 있다. 백정은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던 신분으로 도살업에 종사하였다. 백정의 딸과 결혼한 송관수는 백정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백정의 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을 진주에서 시작한다.

6. 나가기

조선시대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양반과 중인은 조선의 지배계층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상민과 천민은 피지배계층으로 힘든 삶을 살아갔다. 양반은 벼슬을 하고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였으며 중인은 전문직으로 역관, 의관, 율관, 지관 등의 기술직과 중앙,지방의 하급관리들이다. 상민은 보통 백성으로 불리는 양민으로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 있었다. 천민에는 노비, 백정, 무당, 광대, 기생 등이 속했다. 갑오개혁과 형평운동 등 여러 개혁을 거치면서 조선의 신분제도는 해체되어 갔다.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제 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생각나누기

조선시대 ( )신분으로 태어난 나에게 오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 ) 이다. 그 이유는?

참고자료

박경리, 『토지』, (주) 나남, 2007
중학교 역사 교과서

 

강희재 쌍룡중 교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