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날에 유행했던 최희준 씨의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수줍던 아내가 첫 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 무슨 의미일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아내에게 자식에 대한 첫 사랑이 생겨 자신은 뒷전이 된 남편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우리 정치인들은 선거 전 국민들 앞에서는 수줍은 새악시같이 무엇이든지 국민을 위하는 일이면 어떠한 것도 다 해 줄 것처럼 예기한다.

이들의 공약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벌써 복지선진국에 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선된 후에는 새로운 첫사랑이 생겼다.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것이다. 국민을 어떻게 하면 보다 잘 섬길까 보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져 남편이던 국민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요즘 정가에는 보편적 복지를 가지고 정치적 논쟁이 한창이다. '모든 아동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잘 사는 가정 아이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하자는 것은 예산 낭비요 표를 얻기 위한 포플리즘이다'라고 주장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분명 지금 보편적 복지를 포플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여당사람들도 정권을 잡기 전에 많은 무상복지공약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집권을 하고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야당도 단순히 다음에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보편적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운다면 여당과 다를 바 없다. 보편적 복지는 반드시 국민들을 위해 실현돼야 하고 집권 후에 반드시 실천하기 위해 공약으로 내 세워야 한다. 선거용으로 복지를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건설은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훌륭한 '국민의 집'으로 만들기 위한 연대 정신에서 출발했다. 암울했던 19세기 후반부터 스웨덴에서는 연대 정신 위에 보편 복지가 시작됐고, 이후 사회정의·평등·자유가 이뤄져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가 됐다. 이런 보편적 복지를 '망국적 포플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1928년 1월 스웨덴의 사민당 의장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은 '국민의 집(Folkhemmet)'이라는 제목의 국회 연설에서 보편적 복지 정신을 강조했다. "훌륭한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그러나 오늘의 스웨덴은 좋은 집이 못 된다. 계급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가 경제는 소수 특권층에 좌우된다. 사회 구성원 간의 진정한 평등을 요구받고 있다"라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사민당은 4년 뒤 1932년부터 44년간 내리 집권하면서 복지국가를 건설했으며, 83년 전 이 연설이 기틀이 됐다.

오늘날 우리나라 보수진영은 보편적 복지의 망국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스웨덴 기득권층은 앞장서서 보편적 복지를 추진했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시초인 노령연금(1913년) 도입을 보수 정치인들이 주장했다. 스웨덴은 농사짓기에 나쁜 기후조건이어서 전 인구의 1/4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갈 정도였고 당시 조선보다 더 가난했던 상황이었다.

당시 정치인들은 보편 복지만이 극심한 빈부격차를 줄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가가 진정성을 갖고 국민 생활이 향상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그에 대한 신뢰를 얻을 때 국민들은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사민당 정치가들은 시민들이 올바른 정책에 표를 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아는 게 힘'이라며 무상교육을 시행했다.

이어 국민건강제도를 비롯한 사회안정망을 확충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조세 부담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생각은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용했다. 국민연대의식이 발전했고 그 바탕위에서 사회·경제적 자유·평등·사회정의가 실현됐으며, 복지선진국으로 발전했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권력만 좇지 않고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을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상대 당 정책공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야당도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이 돼서는 안 된다. 이것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정치인들의 자세이다. 복지는 선거용이 아니며 국민은 봉이 아니다.

김형방 상지대사회복지학부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