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병 화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 버려야 한다
오고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잊어버려야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 나도 또 하나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자리에
싸리 꽃이 마구 핀 잔듸 밭이 있어
그 잔듸 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 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해 바쳐온� 마지막 내 작은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잊어버려야 한다
● 감 상: 82세의 나이로 조병화 선생님이 9일 오전8시55분에 타계하셨다. 나는 문학소녀 시절부터 그분의 시를 무척 좋아했다. 평이하면서도 낭만적인 그분의 시, 시의 오묘한 철학적 진리에 앞서 그분의 삶, 그 자체가 시였고 멋이었고 인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재직하고 계신 대학을 선택해 갔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분은 시보다 더 멋진, 더 고독한, 더 고뇌하는 영혼을 살고 계셨다. 이 시는 그분의 두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분의 영혼을 그토록 허무와 고독과 좌절의 도가니속에서 방황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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