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이 밝은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강원도교육청의 발표대로라면 올해는 강원도에 비평준화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고교평준화를 실시하는 첫해(2012년 입학)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고교평준화와 친환경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워 압도적으로 당선된 민병희 교육감의 정책들이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다.

민병희 교육감은 취임이후 고교입시제도개선추진단을 구성해 고교평준화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공청회와 1·2차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년 12월 고교평준화 방침을 최종 확정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과학부에서는 지역별 학군 설정, 교육여건 격차 해소 등에 대한 준비 부족을 이유로 '교육감이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에 관한 규칙'(부령) 개정요청을 반려하고 시·도 조례를 통해 고교평준화를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맞서 민 교육감은 교과부에 부령 개정을 재요청하고, 안되면 자체시행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도교육청과 교과부가 옥신각신 갈등하는 사이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학생들과 일선교사, 학부모들이다. 올해 중 3이 되는 학생들이 평준화된 제도로 고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3월까지는 입시제도가 확정돼야 하는데 지금은 뿌연 안개 속이다. 그러다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교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원주지역에서 고교평준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꾸준히 있어 왔다. 실제로 전국 고등학생의 70%이상이 고교평준화 제도를 적용받는데 비해 비평준화 된 지역의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입시에 매달리고 있다. 원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직 어린 중학생들이 고교입시를 위해 학원으로 내몰리고, 학교에서는 내신관리라는 명목으로 친구들 간 지나친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일선학교도 아이들의 진학률이 학교평가의 기준이 되는 현실 속에서 인성교육과 다양성 교육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학부모 또한 아직 여유가 있는 중학교 시절에 다양한 체험활동과 봉사활동, 책읽기를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찾도록 하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다. 고교입학과 동시에 자기 아이의 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꿈을 가져야 할 나이에 아이들은 서열화 된 학교에서 차별과 패배를 배운다. 그 아이의 재능이나 장점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어떤 신념을 갖고 학교를 선택했는지도 상관없다. 그저 아이가 입고 있는 교복에 따라 일류와 삼류가 있을 뿐이다. 일류대 입학이 왕도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낙오자와 같은 이름이다. 원주로 이사 와서 '원여고'와 '안여고'란 말을 처음 들었던 때가 떠오른다.

평준화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안여고?' 학교이름이 참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원주여고를 제외한 원주시의 모든 여고를 '안여고'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원주에서는 출신 고등학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는 말일 것이다.

고교평준화가 모든 교육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평준화가 돼도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일류대를 향해 달려가는 현실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중학교 3년의 자유는 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자랑스런 모교 이름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할 고등학교 3년의 시간도 갖게 될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에서는 좀 더 치밀한 계획과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혼란이 적고 다수의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고교입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학생과 학부모들을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논리로 원주시민의 과반 수 이상이 찬성하는 고교평준화가 무산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은 미래세대의 주역인 우리의 모든 아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