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양의 후예가 많은 원주에서 "그 병원에 가면 돈 없는 사람도 치료해 준대!"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많이 들린다면 얼마나 흐뭇한 일일까.

얼마 전에 종영된 드라마 제중원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세브란스 전신인 제중원 의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사 자격을 취득한 박서양 박사의 눈물겨운 일대기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이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그렸는지 과장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주인공이 겪는 처절한 역경이라든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쏟았던 헌신적 사랑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술이라고는 전무한 조선에서 그것도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천민으로서,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집념과 사랑 없이 어찌 주인공이 그 대단한 일을 이루어냈겠는가.

드라마 제중원을 계기로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에 서양의술을 보급시킨 제중원-세브란스의 후신(기독병원)이 우리 원주에도 터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고 고맙게 느껴진다.

지금은 의과대학이 돈 많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됐으나,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지배 계층으로부터 배척당하던 곳이었으니 인간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 채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이 엉터리를 부수어 버린 선구자의 "용기"와 "이성"은 그래서 늘 되새기고, 숭상해야만 하는 것이리라.

인터넷을 뒤져보니, 박서양 박사는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박서양이란 분은 드라마 제중원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세브란스 병원이나 연세대학교는 동상을 세우는 등, 이런 위대한 선구자를 기리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나 싶다. 조국 근대화의 대들보 같은 분이기 때문이다.

황정(박서양의 드라마 속 이름)과 같은 거의 성인 수준의 인술(仁術)을 지금의 박서양 후예들에게 바라기는 어렵겠지만, 당시의 미국 의사들이나 그 조선 제자들의 거룩한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흐뭇한 의료 선행들이 많은 병원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을 해 본다. 지속적인 의료복지 확대 정책으로 지금은 우리나라도 중병이나 난치병의 많은 부분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직도 돈이 없어 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 방송을 통해 너무 많이 그런 사례들을 접하게 되어 안타깝다. 다행히 방송을 타게 되는 경우에는 성금으로 해결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제 병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황정(박서양) 생각이 날 것도 같다. 따지고 보면 지난 세기 그런 선구자들의 헌신으로 우리가 (오늘날의 의사나 환자 모두) 싼값에 편하게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이익을 "외부효과"라고 한다. 이제 이 외부효과에 값을 조금씩 지불할 때도 되었다. 지금도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경영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병원이 앞장서면 어떨까. 암흑과도 같은 시련 속에서 서양의술을 이 나라에 심어준 박서양의 후예들이 많은 원주에서, "그 병원에 가면 돈 없는 사람도 치료해 준대!"라는 드라마 속 대사 같은 말들이 많이 들린다면 얼마나 흐뭇한 일일까. 정치가들이 남의 돈(세금)으로 넉넉한 집의 자식들까지도 "무료로 학교 점심을 먹여 주겠다"고 생색을 내는 선거철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