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니던 시절 5월 어느 날이었다. 학교 게시판에 모 방송국 성년의 날 특집 토론 프로그램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광고가 붙었다. 지금과 달리 용돈 벌이 수단이 마땅치 않았기에 당시 방송국 방청객 아르바이트는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방송녹화 구경도 하고 수당도 짭짤하게 받을 수 있는 고급 아르바이트였다.

그날 방송토론의 주제는 성년의 의미와 역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특히 선거 연령 제한에 대한 토론이 치열했다. 패널들은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측과 아직은 시기상조이므로 (그 당시의) 현행대로 만 20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측으로 나뉘어져 긴 시간동안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마침 진행자는 방청석에서 만 20세가 된 학생을 찾았고 나는 막 성년이 된 젊은이로서 당연히 투표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쪽의 편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20 여년이 지났고,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도 투표 연령을 만 19세 이하로 낮췄다. 긴 논쟁의 결과이이지만, 만 18세와 만 20세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10대의 투표율은 기대 이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0대와 20대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19%로 최저였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강원도는 처음으로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다. 1차에서 교육감, 교육위원, 지역구 도의원과 시의원을, 2차에서 도지사, 시장, 비례대표 도의원과 시의원을 한꺼번에 뽑는 선거이다 보니 유권자들은 혼란스럽고 골치가 아플 법하다.

특히 도지사나 시장에 비해 교육감을 뽑는 일에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이전에 다른 시군에서 치러진 직선제 교육감 선거에서는 20%를 넘지 못하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는 바람에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못한 주민직선 교육감 선출 방식을 다시 원래처럼 간선제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교육문제가 온 가족의 행복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어떤 정책과 철학적 관점을 가진 교육감을 뽑느냐 하는 문제는 시장, 도지사 선거 못지않게 시민들의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친구가 농담처럼 던진 말은 마음에 새길수록 진리로 느껴진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면 부부사이가 좋고,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부부 사이가 나빠진다." 참 어이없는 이야기이지만 냉혹한 우리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이 성적 때문에 상심한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사례가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괴롭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행여나 자기네끼리의 경쟁에서 뒤질세라 노심초사하고, 중간에 있는 아이들은 잘하는 아이들 좇아가기에 바쁘고,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구박덩어리가 되기 쉽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가 되어 사이도 나빠진다. 경쟁과 수월성을 외치며 상대평가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근래만 해도 지난 몇 달 간 원주와 춘천에서 성적 때문에 스스로 꽃다운 목숨을 끊은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공동체 안에서는 시민들도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를 교육감으로 뽑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 원주 시민들이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역의 당면한 교육 문제와 후보자들의 정책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연, 지연에 따른 맹목적인 투표 성향도 문제지만 무관심은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라면 노소를 막론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지역 교육의 미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