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시청에 들렀다가 어느 과장급 공무원으로부터 예전의 일화를 듣게 되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충북 오송과 대구에 빼앗겨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쨌건 현재 원주시는 여타가 알아주는 의료기기 메카 도시가 되었고 그것은 십수년 전 어느 날 연세대 윤형로 교수님이 찾아와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장에 다녀오자는 제안에서 비롯됐다는 일화였다. 당시 그런 전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 교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이 오늘날 원주 의료기기산업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탁월한 선택과 발상이었다는 점에서 참 흥미롭고도 재미난 얘기였다. 지역 대학 교수의 열정과 노고 그리고 생뚱하다 싶었던 제안에 마다하지 않고 관심과 뒷받침을 기울였던 공무원들의 합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화를 재미있게만 듣고 있을 순 없었다. 만일 그런 교수가 없었다면?

다시 말해서 보통, 교수들은 지역과 무관하거나 자기 고유의 연구 분야가 있게 마련인데 학교 울타리에서 학문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교수가 대부분이라면 그리고 실천적 학문을 한다 해도 그것이 원주시와 연결되지 않아 연계성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오늘의 원주시 특화사업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친 역사의 가정은 현실에 도움을 주지 못하겠지만 혹시 또 다른 그와 같은 발전 분야는 없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관계 공무원들은 그런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고민하며 열심히 찾아다녔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경우 대단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 20년 된 국장급 관료들의 경우 왠만한 교수보다 전문성과 정보에 있어서 우위에 있는 경우도 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의 정치적 중립성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선 바뀐 정권의 창의적 의욕이 관료들의 복지부동적 저항에 부딪힐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면 지방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방자치 이후 지방은 예전보다 자율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치단체장의 임명 시절과 비교하여 민선 이후 커진 자율성만큼이나 지방공무원들의 부서 이동 및 순환 근무 빈도 또한 커진 것이 사실이다. 요즘 지방 공무원들의 경우 대개 근무지가 성장지와 일치한 경우가 많아 애향심이 높을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전문성이 중앙 공무원들 만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더구나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 우물 속의 구성원들이 그 빠른 변화를 따라잡기는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쩌다 돌아본 이웃 도시들을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벌써 선발의 이익을 놓치는 일이다. 한 분야에 대한 지속적 탐구와 노력이 수반됨이 없이 어쩌다 떠오른 생각이나 어쩌다 구경한 것들을 모방하기에 원주시의 인구나 예산은 아주 커져버렸다. 또한 관료들이란 행정의 지속과 관리가 주 업무이고, 창의적이고 혁신적 생각이 나오기엔 한계가 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에 각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사실 일년에 한두번 열리는 민간위원회에서 그런 노력의 발상이 나오기는 어렵다. 원주시에도 예전부터 여러 위원회와 원주비젼 21이라든가 각종 정책 자문기구들이 있었으나 자문 이상의 그 실질적 효과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6천억이 넘는 예산과 천여명의 직원이 운영하는 거대 원주시의 발전에 대해 창의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전문 인력 브레인 집단이 필요하다. 사욕이 앞서는 나눠 먹기식 연구물과 여러 도시를 베껴 먹기식으로 복사해내는 외주 프로젝트팀에게 원주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지역에 기반을 둔 전문가 집단을 찾아내고 구성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