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제주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서귀포 올레길을 걸으며 길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 올레길은 서귀포에서 이중섭 미술관으로 연결되는데, 올라가는 길가에는 '이중섭 거리'라는 이름이 붙어있었고 여기저기에서 화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서 좁은 돌길을 따라 내려가면 화가의 생가가 나타난다. 아주 작고 초라한 1칸짜리 셋방에서 가족 4명이 살았다고 하니 그 당시 화가가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를 그려볼 수 있었다. 생가를 나와 조금 올라가면 미술관이 나타난다. 1층에는 화가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여러 장의 사진과 그림, 글 등이 있었고 부인과 주고받았던 편지도 있었다. 부인이 일본인이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2층에서 화가의 많은 작품을 보고 감상할 수 있었다.

화가는 1951년 제주도로 피난을 와서 1년 조금 못된 기간을 이곳에서 살았다. 서귀포시는 화가가 이렇게 짧은 기간밖에 서귀포에서 살지 않았지만 일찍이 지역의 문화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생가도 복원하고 미술관도 건립했다. 1년 밖에 살지 않은 사람을 지역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과 지자체에서 너무 상업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지금은 제주 올레길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작년에는 10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이 기념관을 다녀갈 정도로 제주도의 문화예술 관광코스가 되었고 매년 이중섭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길을 내려오면서 원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원주에도 박경리 문학공원은 작가의 문학성을 계승하고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원주의 현대 인물사에서 박경리 선생과 함께 선양되어야 할 분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70,80년대의 대한민국 민주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분이고, 유기농 먹을거리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한살림 협동조합과 생명사상을 일으킨 분이고, 서예와 문인화에서는 독특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이룩한 서예가로 이름이 나 있다.

중앙동 밝음신협 4층에는 '무위당 기념관'이 있다. 아직 규모나 내용면에서 기념관으로서 많이 부족하다. 또 봉산동에 가면 선생께서 사셨던 생가도 있다. 최근 환경 및 생명사상 그리고 문화가 현대인의 관심거리가 되면서 선생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국 및 일본에서까지 기념관을 찾고 있다.

원주의 옛 인물들을 선양하는 사업은 지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 되고, 인물의 사료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은 역사를 지키는 것이며 또한 관광자원의 하나로서의 중요성을 갖는다. 얼마 전부터 무위당의 생가가 봉산동재개발지역에 포함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관심 있는 이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생가가 국가 혹은 시의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인근에 기념관이나 미술관이 건립되어 선생의 정신이 계승되고 예술작품들을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년도 살지 않은 화가를 위해 축제를 하고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지어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귀포시를 보면서 원주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인물의 진보와 보수 사상적 배경의 차원을 넘는 우리 모두의 원주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