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과 권력의 난장판

우리 집은 산양을 길러 아침마다 젖을 짜먹습니다. 염소라고 잘못 알려진 산양은 스위스의 ‘자아넨’ 산골짜기가 원산지인데,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과 같은 소목 소과이지만 속이 다른 동물입니다. 우리 가족은 어미 산양을 ‘양이’라고 부르는데 이제 울음소리가 퍽 다채로워 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산양의 기사가 실린 아침신문을 열며 문득, 엄동설한에 우리 집에서 대접받는 ‘양이’와 멸종 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217호 산양(국내에 7-800마리만 서식)종의 운명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무엇이 두 산양 종의 진화를 이렇게 판이하게 했을까요?

진화는 생명과 자연환경의 상호의존성을 극명하게 증언합니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왕권과 정권의 속성처럼 자기 세력과 종의 지속성 내지 확대이지요. 진화가 상호작용의 과정이라면, 종의 번성을 위해 ‘자아넨 산양’이 사람의 욕망과 필요성을 예측하고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골다공증에 좋은 젖 말고도 우리 ‘양이’는 귀엽고 순결한 이미지를 각인시켜 자신을 구매하려고 나를 청주까지 달려가게 했고, 아침 추위에도 젖 짜는 수고를 감내하게하면서 일용한 먹이를 안정적으로 대접받습니다. 서로 맞물리는 공진화의 모든 관계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지요. 자연의 생명활동에서는 주연과 엑스트라가 따로 있지 않고 모든 생명이 최선을 향해 진화를 거듭하는 주체들입니다. 자연의 무대에서 모든 생명은 균등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정부 들어서 다수의 힘에 의한 일방주의가 판을 칩니다. 밉든 좋든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풍요로운 사회를 창출하는데 꼭 필요한 상대역이라는 점을 묵살하는데서 야기되는 혼란입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시민사회는 위정자 독무대의 불청객, 아니 적으로 몰렸습니다. 뻔 한 뉴스의 매스컴에 초대받은 시청자들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교감의 흥이 사라진 따분한 정치판은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지경입니다. 함께 더불어 어울리며 공존과 공변을 도모하지 않는 다면 우리사회는 진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치적은 스스로 파는 무덤이 되고 말지요. 인간의 욕망과 정보를 면밀히 챙겨 자신의 DNA에 내장하며 더불어 진화해 온 ‘자아넨 산양’은 우유보다 모유에 가깝고 아토피 예방의 효능까지 갖춘 젖으로 오래 전부터 나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순진한 미소로 말입니다. 우리 ‘양이’가 오래 전 이미 내가 행복한 노후를 위하여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고 준비해 왔다는 사실은 경이로울 뿐입니다. 온몸을 던져 치열하게 열려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두 산양 종의 운명을 지켜보며 요동치는 권력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현 정권은 이전 정권의 필연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억지와 조작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권력의 난장판이 도리어 연민으로 다가옵니다. 유장한 생명과 자연계의 운행은 위대합니다.

고졸학력의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던 가학적이고 비정한 표적수사 논란, 인위적 개발의 몽환과 한탕주의의 4대강 개발, 약자에 대한 살인적 왕따와 은폐의 용산참사, 미디어법의 탐욕과 절차상의 결함, 공무원과 교사들의 체질정화 열망에 대한 재갈물리기, 사법부의 상식적 판결에 대한 색깔공세, 세종시 약속 파기 등, 지금 우리사회가 겪는 갈등과 혼란을 지켜보며 ‘삶의 미술’을 추구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외면할 수 없어 이 글을 쓰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