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좋은 스승을 만나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대학원 시절 성공회대학교 학부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손바닥 만한 캠퍼스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을 마주치고 함께 축구도 하며 자상한 아버지처럼 대하셨지만, 수업 시간만큼은 매우 철저하셨다. 한 해를 정말로 마감하는 지금 당시 신영복 교수께서 가르쳐 주신 내용을 떠올려본다. <논어>의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구절을 강의하면서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재해석을 하셨다.

자기와 타자를 인정하는 사람이 군자요, 타자를 용납하지 않고 지배하려 드는 자를 소인이라고 본 것이다. 해석이야 논쟁의 여지는 늘 있기 마련이지만, 그 내용이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시의적절한 가르침인 것은 분명하다.

소통이 사라지고 일방통행이 대세였던 한 해였다. 매일매일 들려오는 뉴스에는 절망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복지에 관한 예산은 뭉텅이로 잘려 나가서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생태와 환경은 멀리 뒷전으로 사라졌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불순하고 잘못된 사람들로 도매금에 넘어가 버렸다. 실제로 탄압도 당했거니와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는 인고의 시간이다. 내년이면 좀 나아질려나? 하는 스스로의 물음에 스스로 고개를 젓는다. 돈을 많이 벌어서 서로 나누어 주겠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그 이면의 더럽고 추악한 부패의 그림자는 감추어져서 드러나지 않는다.

2010년은 지방자치 선거가 있는 해이다. 또다시 많은 구호와 약속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우리들 역시 아주 죽어라고 욕을 하고 나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할 것이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나라, 우리나라의 민도는 여전히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으로 희망을 삼을까? 신영복 교수의 글과 생각을 빌어 보면 아쉬운대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우직(愚直)함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에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이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절망과 조급함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키고 우직함으로 곧은 길을 가는 한 해, 너도 나도 달려가서 일 등만을 생각하는 때에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을 때도 이런 기준을 삼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계속 이루어내겠다는 약속을 하는 사람보다는 무엇인가를 굳세게 지키겠다는 사람이 많이 뽑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