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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보물 ⑨봉산동 봉산

정월 봉화제 열고 소원 비는 곳 이기영 기자l승인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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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산미에 오른 이웅섭 19통장은 과거 봉산과 관련된 추억을 한아름 풀어냈다.  
 

봉산동의 자랑거리인 봉산은 인근 주민들은 물론 동부권 주민들이 이용하는 지역의 쉼터로서 자리매김했다. 봉산은 산의 모양이 봉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봉산의 끝봉을 봉산미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봉산 때문에 원주에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봉산미 부근에 쇠를 박아 혈을 자름으로서 봉사의 전기를 끊었다고 해서 봉살뫼라고도 불린다.

이웅섭(65) 19통장은 "봉산동에서는 과거에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다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인물 배출을 막기 위해 봉산미에 긴 쇠막대기를 박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봉산에는 소나무보다 진달래가 많았다"고 말했다.

배말(아포리 배말타운 앞)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고 상거래가 이뤄져 가장 번화했던 곳이 봉산동이다. 당시 상인들은 배를 정착시키고 봉산을 올라 약수를 마시는 등 쉼터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원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돼 있던 곳이 봉산동이었다. 1975년 당시 1만7천110명까지 인구가 급증했지만 신규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점차 인구가 감소했다.

현재 단계동 봉화산이 많은 원주시민에게 사랑받고 있다면 봉산은 태장동과 봉산동, 원인동, 중앙동 등 동부권 시민들이 이용하는 산이다.

봉산미를 오르기 전 보현사 맞은편에는 물이 마르지 않은 샘물이 하나 있다. 이웅섭 통장은 "수십년 전에는 워낙 많은 물이 샘솟아 원주천까지 흘러내려갈 정도였지만 지금은 수량이 줄어든 편"이라며 "봉산미를 오르는 등산객들이 목을 적시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봉산미를 오르던 김모 씨는 "등산을 좋아하는데 봉산은 오르기도 쉽고 오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얻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며 "봉산이 오랫동안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했다.

봉산미는 운동과 산책, 휴식을 즐기기 위해 하루 평균 300~500명의 시민이 찾고 있다. 정상까지 20~30분이면 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광택지와 원주초등학교, 가메기, 번재 등 5~6곳에서 봉산미를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휴식을 즐기기에 제격인 것.

원주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매년 봉화재를 열어 소원을 빌며 떡국을 먹는 곳으로 유명하다. 봉산동 주민센터 김억수 동장은 "봉산은 봉산동을 대표하는 명산이고 오랫동안 시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봉산동 주민들은 봉산미를 공원으로서 정비해줄 것을 오래전부터 요구하고 있다. 1970여년에 공원으로 지정된 봉산은 다른 공원과 달리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

이웅섭 통장은 "봉산은 봉화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게 사실"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사용하면서 훼손된 곳도 있어 정비는 물론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영 기자


이기영 기자  kylee@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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