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효율을 요구하는 21세기에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겐 자신의 삶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그런데 이런 삶에 대한 반성으로 '느림(슬로우)'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도시 전체가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슬로시티(Slow city)의 사람들, 건강을 위해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조화된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 현재 삶을 유지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슬로우 라이프 실천가들, 이들 모두는 잃어버린 관계와 건강의 회복을 위해 여유와 쉼을 찾는 사람들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슬로우 라이프 운동은 이제 우리나라의 여러 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도시인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흙을 밟으며 천천히 걷는 운동은 등산, 자전거타기 등과 함께 트레킹(trekking)의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도 출신의 한 여성 언론인이 퇴직 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2년 전부터 '슬로우 라이프'를 기치로 내걸고 개척했던 제주 '올레길'이라는 걷는 코스가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면서 유명해지자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지자체, 시민단체, 동호회 등이 나서서 그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문화를 곁들인 걷는 코스를 색다른 명칭과 함께 개발하고 홍보하느라고 난리들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는 청정 자연환경을 살려 백두대간과 남한강, 북한강, DMZ, 동해안 등 5개 노선의 1200km(3000리)를 잇는 '산소길'사업을 추진 중이고, 전라남도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영광에서 광양까지 길이 2500㎞의 해안선을 50개 구간으로 나눠 역사·문화·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남도갯길 6000리길'을 조성한다고 한다. 충청남도는 천년고찰인 공주 마곡사와 그 뒤 태화산의 소나무 숲에 '마곡사 솔바람길'(11㎞)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고, 경상북도에서는 400㎞ 길이의 '낙동정맥(태백산맥의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트레킹로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단법인 '숲길'은 산림청의 녹색자금 지원을 받아 지리산을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가는 800리 길을 10-20km의 5개 구간과 언저리길 24코스로 나누어 '지리산 둘레길'을 개척하였고, 대구에서는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안티 공구리'(콘크리트 반대를 뜻함)을 내걸고 동구 금호강을 따라 걷는 강길과 동구 불로고분군을 따라 걷는 고즈넉한 길 등 대구올레 2개 코스를 만들었다.

이처럼 전국으로 퍼진 걷는 코스 개발 붐을 일으킨 제주 '올레길'은 연륜을 따져 볼 때 1996년부터 올해까지 14년째 원주에서 치르고 있는 국제걷기대회를 위해 대한걷기연맹이 원주지역에 개척한 10개 걷기코스(5km, 10km, 20km, 30km, 50km 각 2코스)보다 역사가 훨씬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걷기연맹에 소속된 대한걷기연맹의 근거지인 원주가 전국의 걷기운동을 주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외지 관광객이 평소에도 많이 찾는 자랑할 만한 걷는 길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트레킹 자원이 부족하여서가 아니라 관광객유치를 고려한 체계적 코스개발과 문화적 포장 그리고 마케팅전략이 부재하였기 때문이다. 

걷기운동의 본고장이자 정부보다 녹색성장을 먼저 내세운 원주가 '느림'의 미학인 걷기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지역처럼 잠재적인 트레킹코스들을 발굴하고 이미 개척한 걷기 코스들과 함께 이용객들이 계절별, 테마별, 연령계층별, 일정별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각 코스에 대해 문화역사시설과 연계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생태체험프로그램, 편의시설, 안내표지판 등을 잘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마케팅전략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원주가 타지역과 차별화할 수 내용은 유비쿼터스 시범사업으로 종합운동장, 원주천, 흥양천의 세 군데 U-걷기코스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인별 기록 전산관리시스템을 활성화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우선 보다 많은 시민이 U-wellness 전자태그를 발급받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후 평가과정을 거쳐 추가적으로 코스를 개발하고 외지방문객들도 쉽게 참여가능하게 하며 누적거리별 인증포상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확대방안을 관·학·민이 참여하여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