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호남성 북쪽 동정호에 두보의 시로도 유명한 악양루가 있다. 북송때 재상인 범중엄은 지방장관이 악양루를 개수하고 글을 부탁하자 '악양루기'라는 감상문을 지었는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옛날의 인자들은 지위나 명예를 기뻐하거나 신세를 비관하지 않았다. 조정의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오로지 백성의 노고를 걱정하고 조정에서 멀리 물러나 있을 때는 군주의 과실을 걱정하였다. 나아가도 물러나도 항시 근심을 하였다. 그들에게 언제 즐기냐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천하의 근심보다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김보다 나중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이 말에서 '늘 백성을 먼저 걱정하고 뒤에 즐긴다'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사나 인자의 마음가짐과 일을 대하는 자세를 이른 말이다.

지난주까지 신임총리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다. 기업체의 돈 수수에서부터 가족관계까지 적나라하게 밝혀지면서 여야간의 총리인준을 놓고 충돌하다 야당의 불참속에 인준이 승인되었다. 그렇게 새로 임명된 총리가 앞으로 '선우후락의 자세로 어둡고 그늘진 곳부터 먼저 챙기겠다'고 한다. 이어 '중도(中道)실용의 정신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구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중도는 불가 용어로 중간이나 중용(中庸)이 아니다. 시비선악과 같은 상대적인 대립을 넘어 모순과 갈등이 상호 융합하여 이루어지는 경지이다. 그러니까 중도라는 말은 유형이 무형이고 무형이 유형이 되는 유무상통을 의미한다.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니에게 한 말씀이 "내가 중도를 깨우쳤다"는 말이다. 편벽됨이 없이 서로 상통하여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 존재의 근원에 이르렀다는 말씀이다. 추석을 앞에 두고 한 신임총리의 말을 접하면서 작금의 백성의 근심과 우려가 어디에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이 시대에 그늘진 곳이 한 두 군데이겠는가? 용산참사 유가족은 아직도 장사를 못 지내고 있고, 금호타이어를 비롯한 노동현장은 아직도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 대다수는 4대강 개발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신임총리는 총리 임명 전에 4대강개발에 반대의견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분이고 임명직전에는 '용산참사 현장을 제일 먼저 찾아 보겠다'고도 했다. 알지 못하는 그늘과 대립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사는 사회는 늘 대립과 갈등, 선악의 시비가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중도실용정치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다. 중도실용정치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이 앞서면 말이 잣대가 되어 사람들 눈에 가시가 생긴다. 그러면 될 일도 잘 안된다. 마음에 새길 말을 삶이나 실천보다 앞세울 때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뀌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임총리의 일성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중엄의 이야기를 하나 옮겨 본다.

범중엄이 한 번은 혼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참외 장수가 참외를 한 짐 지고 장으로 팔러가는 것이 길 위로 바라보였다. 배도 고프고 날씨도 더운 판에 참외 하나만 먹었으면 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사서 먹을 돈이 없는 그는 속으로 하나만 아래로 굴러 떨어졌으면 하고 바랬다. 귀신이 감동했는지 참외 장수가 몸을 추스르자 참외 하나가 지게에서 굴러 길 아래로 떨어졌다. 참외장사는 지게를 받쳐 놓고 참외를 가지러 내려 올까말까 하고 망설이더니 귀찮은 듯이 그대로 가 버렸다. 물론 범중엄은 반갑게 주워 먹었다. 그 뒤 재상이 된 범중엄은 이때 생각을 잊을 수 없어 참외가 떨어졌던 곳에 큰 참외 원두막을 짓고 많은 참외를 심어 지나가는 돈 없는 나그네에게 돈 안받고 주게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