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음악을 듣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 작은 카세트를 구입한 적이 있다. 그때의 기분을 성인이 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조금 더 자라서 그토록 바라던 오디오세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도 부모님을 많이 졸랐었다.

오디오를 집에 설치하던 날, 그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자리에 가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과 행복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을 때도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 기억이 있다. 어려운 살림에 아들의 과분한 취미 생활을 위해 출혈을 감내하신 부모님에 대한 나의 느낌을 가감 없이 말했었다. 아마 사람에게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행복의 경험이 있고 아직도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 2월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결정요인과 행복지수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감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67.8점이라고 한다.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의 결정 요인은 혼인의 여부와 월평균 가구 소득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아울러 대도시가 중소도시 혹은 군 단위 도시보다 행복 지수가 높았다. 행복 체감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와 소득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 중에서 행복의 첫째 조건을 '경제적 안정'으로 꼽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다.

행복의 근원을 돈의 많고 적음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국인 외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의 결정 요인인 가족 혹은 가정에 대한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가정의 전제 조건이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부자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사고가 팽배해진 이런 사회가 솔직히 두렵다.

행복의 근원이 돈이 되어서는 안된다. 행복은 관계와 관계의 신뢰성 문제이어야 한다. 빠듯한 살림에 아들의 작은 소원을 들어 주시려 하신 부모님, 그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을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고, 다시 자식에게 배운 대로 받은 대로 조건 없이 베풀려는 사랑의 관계가 우리 행복의 결정적 요인과 지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행복은 기억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은총일 것이다. "사람이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루가 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