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말 대선 때 약속한 대로 서울 논현동 자택과 일부 동산을 제외한 재산 331억원을 출연하여 청소년 장학·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언론에서 크게 다루었다. 재단은 이 대통령이 출연한 건물 3채의 임대료 등 월평균 9천만원, 연간 11억원의 수익금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학비와 식대 등을 지원하게 된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일생 열심히 일하면서 모은 제 재산은 저에겐 정말 소중한 것이지만 저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의 하나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 제 재산을 의미있게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을 발표한 대부분 언론들은 이 대통령이 기부 약속을 실천한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한층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의 의미 있는 실천이 국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기까지 분위기가 조성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생긴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부는 물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부와 권력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대대로 물림을 하여 지키고자 하는 가족 중심, 더 심하게 표현하면 개인 중심의 이기적인 자본주의정신을 갖고 있는 한 기부문화의 획기적 변화는 요원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기부문화가 정착된 대표국가를 꼽으라면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들 수 있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부자란 사회적인 부의 관리인(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개신교 정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합법적으로 축척한 부는 개인적 소유임이 마땅하나 도덕적 가치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기본적 필요 이상의 부는 사회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모범적으로 실천해 미국 자선문화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경영자로는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를 들 수 있다. 카네기는 철강사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 대부분을 카네기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했다. 이전의 부자들이 돈을 버는 데만 급급했던 소위 '샤일록(Shylock)형 부유층, 졸부'로 평가받았다면 그는 최초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라는 개념을 기업과 경영에 접목시켜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경영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중의 하나는 "만약 내가 모든 재산을 내 아들에게 남긴다면 그에게 저주를 남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기부문화의 맥을 잇는 쌍벽이 있으니 바로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다. 세계 첫 번째 부자인 빌 게이츠(53)는 몇 년 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고, 그보다 25살이나 많은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평소 빌 게이츠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3년 전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의 85%에 해당되는 약 36조원의 재산을 빌 게이츠 부부재단을 포함한 5개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이 중 30조원을 자기 가족이 운영하는 재단이 아닌 빌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재단에 기부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재벌의 기부행위는 어떠한가?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가족이 8천억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가족이 1조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거나 내놓기로 한 바 있긴 하다. 어려운 결단이었겠지만 감동은 별반 주지 못했다. 편법 경영권 승계나 비자금 조성 등으로 물의가 빚어진 뒤 마지못해 내놓은 인상이 짙었던 까닭이다. 연말 등 때가 되면 기부가 줄을 잇지만, 주로 개인 재산이 아닌 기업 자금이다. 오히려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안달하는 것이 대부분 한국 재벌과 부자들의 모습이다.

원주에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천사운동이 대표적 기부활동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작년 말로 동참한 연인원이 30만 명을 돌파했고, 누적된 후원금도 약 30억 원에 이르렀다. 그 중 18억 원 이상이 어려운 시민들에게 지원되었다고 한다. 원주시와 원주시사회복지협의회에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홍보활동 중심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물질과 나눔에 대한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이루질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