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한

 영원히 그들과 함께 세계무대를 향한 꿈을 꾸고 싶어요"

　전국최강을 넘어 세계무대로 도약하는 원주역도를 논할 때,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둘이 있다. 김해광 원주시체육회 사무국장과 박미정(32) 원주시청 코치가 그 주인공이다. 장미란을 발굴한 김 사무국장이 원주역도의 기틀을 다진 1세대라면, 제자인 박 코치는 그 바톤을 이어받아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수년째 전국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주여고 역도부의 오늘을 만들어 냈지만 장미란, 윤진희는 알아도 역도지도자 박미정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박 코치는 박근식, 이정희 코치 등이 합류하기 전까진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원주여고는 물론, 치악중과 원주시청 선수들의 지도까지 도맡아 왔다. 사실상 원주 여자역도계를 이끌어 온 '대모'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코치는 소위 잘나가던 선수출신이다. 그것도 가장 몸무게가 가벼운 48㎏급에서부터 75㎏급까지, 전 체급에서 한번 이상씩은 전국을 제패했던 실력자였다.

　타고난 운동실력을 살려 명륜초교를 거쳐 원주여중에 진학할 때까지 창던지기 선수로 활약했던 그녀가 처음 바벨을 잡은 것은 중학 2학년 때. 남자 이상으로 떡 벌어진 어깨에 반한 역도부 감독(김해광 사무국장)이 '싫다'며 도망다니던 소녀 박미정을 2년간의 구애와 설득끝에 움직였다.

　바벨을 막상 잡은 뒤에는 타고난 체격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근성까지 갖춰 연습에만 매달렸고, 그 결과 고 2때 이미 실업팀 선수들의 기록을 추월하며 당당히 58㎏급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실력만 갖춘 것은 아니다. 고교 졸업후 잠시 철원군청에 몸담았었지만 1997년 원주시청이 팀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역도계에서 소문난 '의리파'로 통하는 이유다. 

　역도여제 장미란과 함께 원주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던 그녀는 전성기 때 60㎏의 몸무게로 125㎏의 역기를 들어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역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 이전까지 포함하면 전국체전을 세번이나 제패하며 원주역도를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유독 국제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박 코치 스스로도 당시를 "억세게 운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선발전을 앞두고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무릎부상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어지며 결국 26살 한참 전성기 때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아쉬움은 컸지만 자신이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2001년 지도자로 변신, 원주여고 역도부를 맡게된다. 이른 나이였지만 선수생활을 통한 풍부한 경험과 리더쉽,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곧 지도자로서도 충분한 역량을 발휘했다. 장미령, 윤진희를 조련해 전국을 제패했고, 김소정, 성고은, 김보라, 김혜미, 안소영까지 치악중과 원주여고 전성시대를 연 주역들을 연이어 키워냈다.

　연습 중에는 엄하기로 소문났지만 때론 엄마같이, 때론 친언니같이 대하는 박 코치를 향한 선수들의 신뢰는 우스개 소리로 '교주'에 비견될만큼 절대적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늘 선수들 편에 서서 막역하게 지내다 보니 서로 설명하기 어려운 '믿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모두 한가족이라는 박코치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 코치의 지도력을 눈여겨 본 역도연맹에서도 수차례 대표팀 코치직을 제안했고 타 실업팀에서도 좋은 조건에 영입제의가 쇄도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돈이나 명예를 싫어할 이유는 없지만 힘든 여건속에서도 함께 땀흘려 온 후배, 제자들과 고향에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1일부터 원주시청으로 자리를 옮긴 박 코치는 "소속은 달라졌지만 연습장도 만나는 선수들도 같잖아요. 크게 변한 것은 없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큰 다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좋은 선수들을 만나 능력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며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린 그녀는 "선수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하지 않을 때까진, 영원히 그들과 함께 바벨 앞에서 세계무대를 향한 꿈을 꾸고 싶다"고 했다.

　아직 미혼인 그녀에게 가장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시집요? 안가려고 한 것은 아니데 아직은 인연이 없나봐요. 그런데 별로 욕심은 없어요. 우리 아이들이 새기록을 들어올릴 때마다 '짜릿하게' 행복하거든요. 아직은 역도가 우선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