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부군과 함께 원주시청을 방문, 개명절차를 밟고있는 최우연 할머니(왼쪽).

　"초등학교에 첫 등교해 출석을 부르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는거야…. 한참이나 지난후에야 선생님이 '네 이름이 정자(政子)'라며 '너는 네 이름도 모르느냐?'고 핀잔을 주더라고. 아이들이 모두 따라 웃는데, 나는 분한거야. 분명 내 이름은 우연(藕淵)인데 말이야. 목 놓아 펑펑 울었지."
　최우연(67) 할머니는 당시를 회상하듯 입술을 질근 깨문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나 동네에서도 모두 우연이라고 불렸는데 당시에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어."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서야 부친의 이야기를 듣고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태어나던 해인 1942년은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패전을 눈 앞에 둔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워 창씨개명에 열을 올렸다. 다행히 두 언니와 오빠는 피해갈 수 있었지만 당시 막내 딸의 출생신고를 위해 면사무소를 찾은 부친은 미리 정해 둔 '우연'이란 이름대신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일본식 이름인 '정자'로 출생신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우리주위에 영자, 순자, 명자, 정자 등 자(子)자를 쓰는 여성 이름이 유난히 많은 것은 일본식 이름(∼코·子)의 잔재 때문이다. 일본식 이름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지난해 3월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광복이 되던 1945년 출생한 여성 중 영자(9천298명), 정자(8천995명), 순자(8천314명) 등 같은 이름의 여성이 1만여 명에 이를 정도.
　시대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최 할머니는 정자라는 이름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했다. "내가 체질적으로 일본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내 몸에 일본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정말 싫었다"는 할머니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에 늘 괴로웠다"고도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한사코 우연이란 이름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주문협 회원으로, 토지문학공원에서 운영하는 토지문학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시조로 등단까지 한 최 할머니는 등단 당시는 물론, 이제껏 발표한 세 편의 시집과 수필집에 모두 실제 이름인 우연을 쓰고 있다. 
　할머니는 지난 1월 늦었지만 용기를 내 춘천지법원주지원에 개명을 신청했다. 담당 판사 앞으로 간절한 호소를 담은 진정서와 자신이 발표한 세편의 시집도 함께 제출했다. 할머니의 짐심이 통했기 때문일까? 할머니는 지난 14일 법원으로부터 반가운 회신을 받았다. 개명신청이 받아들여진 것.
　"결정문을 받아들고 남편(이경행(79) 전 용암초교 교장)과 둘이 만세를 불렀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지. 나 혼자 미리 3. 1절을 보낸 것인지도 몰라." 이 전 교장도 옆에서 거든다. "이 사람 얼마나 좋아하던지…. 마침 여행을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 참이었는데 개명을 허락한다는 통지를 받곤 눈물을 쏟더라구"
　시를 쓸 때나 이름을 개명할 때나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최 할머니는 지난 20일 남편과 나란히 원주시청을 방문, 관련 절차를 밟고 66년간 잃어버렸던 우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