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동호회 10여개 회원 800여명 활동

낮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밤 바람이 온 몸을 감싸는 상쾌한 6월의 밤 종합운동장. 해가 길어진 여름이라고는 하나 아직 저녁 8시30분은 어두운 시간.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승용차, 자전거가 속속 입장하기 시작했으며 곧이어 줄잡아 120여명의 인라이너들이 물찬 제비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밤을 잊은 이들로 불야성을 이룬 이곳엔 경쾌, 유쾌, 상쾌의 ‘삼쾌’(三快)가 가득했다. 원주에는 온오프라인 인라인동호회가 10여개 정도 있으며 회원수는 700~800명에 이른다.



경쾌

4분의 4박자를 기본 템포로 하고, 실력에 따라 빠르기가 다양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우선 종합운동장 계단 앞. 흰 페인트로 총 길이가 200m쯤 돼보이는 작은 트랙이 그려져 있고, 트랙 안에는 12개의 종이컵이 30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 줄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트랙 바깥으로는 40대 아저씨와 7살짜리 꼬마가 섞인 30여명의 인라이너들이 ‘씨~잉 씽 씨~잉 씽’ 소리를 내며 날렵하면서도 부드럽게 트랙을 따라 돌고 있다. 누가 박자를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지휘자도 없는데 비교적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반면 트랙 안에서는 무척 빠르고 긴박해 보이기까지 한 리듬이 모스 부호처럼 끊어지면서 들린다.
“더 빨리, ‘샥’하고 틀어야지. 날을 이렇게 하고.” 종이컵을 쓰러뜨리지 않고 컵의 좌우를 파도를 그리며 가는 ‘묘기’다. 벌써 오랜 시간 친구에게 강의를 들으며 하고 있는데 세번째 종이컵을 통과하지 못하고 모스 부호를 새로 시작한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양끝 변두리의 템포는 ‘아다지오’(아주 느리게)쯤 된다. 세 그룹 60여명의 초보자들이 줄 맞춰 서서 레슨을 받고 있는 것. 트랙 진출이 꿈일 이들의 느리고 우아한 몸놀림이 약간 낯설기도 하다. 이들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베테랑들과 초보자들로 보이는 쉼표들이 어우러져 종합운동장 주변은 야외 음악당을 방불케 한다.



상쾌

낮 더위를 시켜주는 밤 바람이 불어 상쾌하고, 인라인에 얽힌 이들의 건강하고 건전한 생활이 청량감을 준다. 직장 때문에 아내, 자녀들과 떨어져 문막에 혼자서 살고 있다는 송선호씨(39). “퇴근 후 혼자 있으니 맨날 술 먹고 있을까 봐 아내가 걱정이 많았는데 술 안 먹고 운동하니 가족들이 대환영”이라며 “아내도 안심시키고, 내 건강도 챙기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한다.

4월에 시작한 이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와 2시간 정도 타고 돌아가는 “대단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직장인 김연황씨(36)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케이스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자연히 먹는 게 다 살로 갔다. 인라인을 시작한 뒤 6주만에 6㎏을 감량했는데 목표인 24㎏ 감량을 무난히 달성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유쾌

젊음과 웃음이 있어 유쾌하다. 물리적 연령으로 따진 표면적 젊음이 아니라 정신 연령으로 본 ‘내면적 젊음’이 이곳에 있었다.


30대 후반의 직장인과 20대 초반의 대학생 사이에 ‘인라인 스케이트’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간다. 어린 자녀를 위해 ‘놀아주든지’ 아니면 함께 놀아본 기억이 까마득한 엄마들이 기꺼이 함께 즐기고 있었다. 위태위태하게 발을 떼던 한 30대 주부는 아이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해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타고 오기를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말이다. “엄마, 이쪽 발 떼봐, 괜찮아, 떼봐.” 초등학생 자녀에 의지해 발을 떼는 엄마들의 모습을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한밤 종합운동장에는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막연히 찾아온 이들을 고수에게 연결시켜주고, 사심 없이 낯선 초보자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는 ‘흔쾌’함이 있었다.

<김보경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