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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과 아카데미 극장의 차이는?

원주 사람들은 남산에도, 원주칠공예주식회사에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원주가 지금 쓰러지기 직전의 아카데미 극장엔 그토록 관심이 클까?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 관장l승인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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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9~1831년에 편찬된 관동지(關東誌)의 원주목(原州牧) 산천(山川) 소개란에 남산(南山)이 나온다. 남산은 원주군에서 남쪽으로 1리에 있다. 그 동쪽에는 어서비각(御書碑閣)이 있다. 선조 계사년 1593년에 서평부원군 한준겸이 원주목사가 되어 관리 최계룡의 집에 관아를 설치하였는데, 이때 인조의 비(妃)인 인열왕후(仁烈王后)가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영조 무인년 1758년에 도신(道臣)에게 명하여 비석과 비각을 건립하였고 임금이 친히 기문(記文)의 글을 짓고 직접 글씨를 썼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강원감영의 관찰사 관사를 관리의 집을 대신 사용했다. 인열왕후는 한준겸 목사의 넷째 딸이다. 

 인조 때 강원도 관찰사이며 문장가인 동주 이민구(1589~1670)는 남산에 올라 풍월을 즐겼다. 문과 장원급제하고 많은 글을 쓴 그가 치악산 위에 뜬 달을 즐기면서 지었다는 등추월대(登秋月臺)란 시가 전해지고 있다. 그를 기리며 남산 꼭대기에 세운 추월대(秋月臺) 기념비가 있다. 남산에는 이밖에도 역사문화 유산들이 널렸다.

 현대에 들어서는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살면서 달동네가 되었다. 나무와 작은 숲 사이사이에 집을 지었고 녹지가 아주 양호했다. 봄이면 꽃들로 덮였다. 낡은 집을 리모델링하고 망가진 골목길을 손보면 남산 마을 전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이 들 정도였다. 자연스레 도심 한가운데의 귀한 자연 녹지가 됐다.

 시민들의 주머니 턴 세금으로 도심의 공원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되는 선물이었다.
강원감영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 남산은 원주란 도시 형성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남산은 많이 나온다. 여지도서, 동여도, 관동지, 강원감영도 등에 남산이 표기돼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그만큼 중요시했다. 

 그 남산이 사라졌다. 원주는 거의 20여 년에 걸쳐 참으로 끈기 있게 없애려 노력한 끝에 마침내 아파트 부지로 만들었다. 남산을 날렸으니 다음은 어딜까. 강원감영 부지에 주상복합 추진일까. 치악산을 중턱까지 날리고 최고 전망의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리가 나오지나 않을까.

 태장1동행정복지센터 뒤편에 500여 평의 부지에 원주칠공예주식회사 건물 3동이 있다. 1957년 원주의 뜻있는 사람들이 민간 자본을 들여 세운 국내 최초이며 유일한 옻칠 전문 민간 주식회사다. 1981년 문을 닫은 후 그대로 방치됐다.

 이 회사가 운영되면서 대한민국 옻칠 분야의 첫 국가무형문화재인 일사 김봉룡 나전장이 원주에 둥지를 틀었다. 전국에서 장인들이 몰려오면서 원주는 옻칠기공예문화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2015년 당시 원창묵 전 시장이 시 예산을 들여 복원할 가치가 없다고 매입하지 않자 문화재청이 나섰다.

 외관과 프레임이 견고하고 역사성과 상징성 등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국비 10억 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시에서 무관심한 사이 건물주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면 재산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 리모델링을 했다. 문화재청의 매입 추진은 하루아침에 무산됐고 국비는 반납됐다. 귀중한 문화유산은 지금 빨래방과 해장국집이 됐다.

 원주 사람들은 남산에도, 원주칠공예주식회사에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원주가 지금 쓰러지기 직전의 아카데미 극장엔 그토록 관심이 클까. 5개나 있던 극장, 특히 원주 역사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시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침묵했는데 아카데미에만 왜 그럴까.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 관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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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인

남산에는 영세상인 등 저소득층이 살고 있던 전형적인 달동네. 그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운 둣, 아카데미를 어떻게 해서라도 없애고 개발을 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지만 이 또한 일방적 사고 방식으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견강부회

2023.03.22 06:31

공수래

또한 뜻있는 사람들이 관장님께서 중요히 여기시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살려 옛것을 보존하기 위해 모였으면 응원은 못할망정 '왜 관심이 클까?'하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무슨 저의인지 몽매한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이런 칼럼은 혹시 관장님마저도 옛것의 보존에 가치를 두던 자신의 신조를 편향된 무언가 때문에 스스럼없이 방기했을까 두렵습니다.

2023.03.21 08:07

공수래

남산과 옻칠기공예주식회사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분이니 온고지신의 의미를 뼈에 새기고 살아가는 분이라 믿었습니다. 그간 기재하신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아카데미에만 관심을 가지냐는 말은 관장님께서 자기 분야만 눈에 들어오는 다소 편협한 시야를 보여주는 듯하여 실망감이 큽니다.

2023.03.2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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