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본지 시평에 공감한다는 독자가 많았다. 김형종 연세대 교수가 쓴 '숙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진행한 '숙의 과정'을 문막 SRF열병합발전소 공론화 과정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숙의(熟議)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어떤 문제를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막 SRF열병합발전소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숙의는 실종됐다. 심지어 주민설명회 때 반대 주민 입장을 막기 위해 용역 직원이 동원되기도 했다. 공공성이 다분한 사업에 사설 용역 직원이 동원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절차적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는 현장을 목도하고 말았다.
 

 어디 이뿐인가. 숙의 실종은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현재 원주시는 1조원 규모의 내년도 본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대부분 원주시민을 위해 집행되는 예산이다. 그러나 시민 의견이 접수되는 통로는 극히 제한적이다. 원주시는 시민 여론을 반영해 예산을 편성한다고 항변한다. 원창묵 시장에게 접수되는 민원을 비롯해 각 부서 및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시민 여론을 모아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이 접수되는 공식 통로는 없다. 공무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는 간다. 사익을 위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일 게 뻔해서다. 그런 자리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속편하단 것이다. 지난 달 열린 원주시장과의 즉문즉답 행사에서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시민 의견수렴 자리는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그런 진통을 눅진하게 겪어야 성숙할 수 있다.
 

 SRF열병합발전소 논란을 촉발시킨 화훼특화관광단지는 원 시장이 제안했다. 물론 시의회 동의를 받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견제기구인 시의회 및 언론의 검증과정이 부실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실 검증이 지금의 사태로 키웠기 때문이다. 2조원 규모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개발사업(글로벌 테마파크)도 마찬가지다.

 곧 구체화 될 것 같다는 원주시 발표에 시민들은 금세 에버랜드보다 몇 배 큰 테마공원이 들어설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있다. 
모든 사업을 여론 수렴 후 결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반드시 공청회 등을 통해 사전에 알리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

 주민 수용성을 최상의 가치로 봐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숙의 과정을 거치면 질긴 생명력을 담보할 수 있다. 단체장이 바뀌더라도 최소한 없던 일이 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아울러 자발적으로 교육장을 찾아서 경청하는 시민의식 또한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