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옥영
 1946년, 강원도 원주 출생/ 가방끈 이어붙이기 대마왕/ 야학과 검정고시로 방통대까지 결국 입성/ 현재는 노인복지관 글쓰기 수업 우등생/ 문학소녀의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쓰고 또 쓰는 사람/ '째려보는 눈' 때문에 심각하게 성형을 고민 중

 내 책 가방끈은 온통 매듭투성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 어머니는 유복자를 낳으셨다. 젖먹이 동생을 업어주느라 초등학교 5학년은 다니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선 동복이 없어 일 학년을 마치고 못하고 그만두었다. 철이 바뀌어 모두 동복으로 갈아입는데 혼자 하복을 입고 다녔다. 집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첫서리가 내리던 날, 간당간당 붙어있던 가방끈은 '툭' 하고 끊어졌다.
 

 가방끈 길이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학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상록야학'이란 곳을 발견했다. 다니던 직장이 외환 위기로 문을 닫자 쉬기도 할 겸 야학을 찾았다. 그곳에선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중·고등 과정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었다. 원하는 사람은 검정고시를 보게 해 대학갈 기회도 만들어준다고 했다. 영어나 배울까 해서 찾아갔는데, 사십 년 전에 끊어진 가방끈을 다시 잇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등록은 했으나 오랜 세월 방치된 머릿속은 길이 잘 보이질 않았다. 말이 길이지 괭이를 들고 보니 온통 억새밭이다. 여기저기 풀뿌리가 발을 건다. 넘어질 때마다 생채기가 났다. 다른 과목들은 평소 읽어둔 책들 덕인지 그런대로 이해하겠는데 수학은 너무 어려웠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차방정식, 인수분해가 뒤통수를 때렸다. 시험 보는 날 결국 수학은 백지를 내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자 조금씩 속도가 붙더니 제법 높은 점수로 고검에 합격할 수 있었다.
 

 다음은 대검에 도전할 차례. 그때 마침 제대한 아들이 복학을 하면 막내딸까지 대학생이 둘이 되니 또 꿈을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목을 적셨을 뿐 앎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는데….
 

 내 고심을 눈치챈 듯 남편이 출근하며 봉투 하나를 손에 쥐여주고 나갔다. 그 속엔 약간의 돈과 짤막한 쪽지가 들어 있었다. '오늘 서점에 가서 고등학교 교과서 구입해요. 기왕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자를 일이지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울컥, 뜨거운 게 올라오고 있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가 늦깎이 공부를 하는 동안 혼자서 가정경제를 떠안고도 '그 나이에 공부는 해서 무엇하냐' 눈치 한 번 안 주던 그였다. 그의 한 마디는 내 생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공부에만 매진해 이번에도 운 좋게 일차에 대검을 패스했다. 남들이 육 년에 도달한 그 길을 오는 데 꼭 사십 년이 걸렸다. 합격증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눈앞에는 서리 내린 그 날 아침, 책가방을 들고 눈물 글썽이던 여자애가 서 있었다.
 

 국문학을 전공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방통대 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막내딸이 실수로 영문과로 바꿔놓았다. 아무려나, 내 마음은 이미 풋풋한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당시 짬짬이 산모 도우미일을 하던 중 한 아기엄마에게 발목이 잡혀 베이비시터가 됐다. 낮엔 아기를 돌보고 저녁엔 인터넷으로 공부했다. 그러나 공부와 일, 가사, 세 마리 토끼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영문 모르고 들어간 영문과, 영문(英文) 모른 채 나와야 했다. 가방끈, 또 끊어졌다.
 

 그 후 다시 동강을 이어 나는 지금 일흔이 넘은 나이에 원주시노인종합복지관 문예창작반에서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예전의 내 책가방 끈은 명주실이었지만, 그것이 쇠심줄로 변했다. 지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간현 집에서 단구동 복지관까지 버스로 왕복 두 시간 되는 거리를 결석 한 번 안 하고 다니고 있다. 하늘이 끊어놓지 않는 한, 이 가방은 내 손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