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경을 통해 1천200여년과 63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한지의 보존성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한지의 힘은 이에 머물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한지가 최근 새로운 각도에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원자재인 닥나무와 함께 과학, 문화, 의학, 생활소재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한지의 무한 변신이 진행 중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지와 닥나무의 특성을 살려 산업에 활용할 경우 생활용품에서 로봇 신소재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다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다. 수년 전 까지만 해도 태국과 중국 등지에서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백피를 수입해 왔다. 국산 원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데 이는 백피 가공의 까다로움에 있었다. 사람이 일일이 닥나무를 벗겨 백피를 만들어야 하지만 외국산 백피와 비교해 열배나 비싸 어느 순간 시장에서 사라졌다. 국내 한지원료시장이 닥나무원료의 생산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물론 품질 면에서는 우리 닥나무를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조악하다. 2모작을 하는 가장 큰 수입처인 태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닥나무 생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봄부터 뿌리에서 줄기로 수관을 통하여 물을 보내서 표피섬유를 굵고 성글게 만든다. 여름의 고온기를 극복하고 가을이 되면 섬유를 가늘고 촘촘하게 만들어서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는 구조로 성장한다. 늦가을부터는 잎과 줄기에 있는 물을 급히 뿌리로 보내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다. 물이 뿌리 쪽으로 내려간 11월 입동부터 이듬해 입춘까지가 우리나라 닥나무 수확 적기이며 이때 수확한 닥나무가 가장 우수하다.
 

 하지만 외산 닥나무 수입을 줄이고 국내산 닥나무의 유통을 활성화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한지의 고장인 우리 원주시부터 고민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원주는 일조량이 많고 바람이 적으며 일교차까지 커 전국 최고 닥나무 질을 자랑한다. 원주시는 2009년부터 닥나무 심기 및 묘목 공급사업을 꾸준히 해온 탓에 현재는 원주닥나무생산자협동조합과 더불어 6만여 평에 닥나무를 식재하고 있다. 하지만 닥원료의 판매가격이 생산비에 못 미치는 관계로 지자체에서 생산 장려금을 지원하는 실정이다.
 

 닥나무는 잎부터 뿌리까지 버릴 것이 없다. 닥나무 잎에는 독성이 없고, 플라보노이드와 글리코사이드 성분이 있으며 빵이나 국수, 떡 등 식품첨가제와 팩, 비누 등 미백화장품 원료로 쓸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닥나무의 어린 가지를 '저경'이라 하여 어혈과 부종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했다. 때문에 풍진이나 소변이 잘나오지 않는 증상의 치료에 사용한다고 적혀 있다. 뿌리 또한 여성들의 관심인 미백효과에 특효가 있음이 과학적으로 판명되었고, 아토피치료에도 특효가 있음이 밝혀짐에 따라 닥나무는 경제성이 있는 소재로 연구 개발되고 있다.
 

 이렇듯 한지의 주원료인 백피를 가공하는 공정상의 부산물과 한지원료를 뺀 잎, 저경, 뿌리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백비누, 미백마스크팩, 닥샴푸, 닥폼크렌징, 닥음료 등 특화된 지역문화 상품 개발을 통해 닥나무 생산자들의 이윤을 높여줄 때 외국에서 몰려오는 닥나무와 비등한 가격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값싼 외국산 한지와 백피에 밀려 점차 사장되는 원주한지 시장이 한지비누나 닥나무 샴푸 개발 등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다.

송종국 원주닥나무 생산자협동조합 사무국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