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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석함으로 둔갑한 한글 목판

고판화박물관, 심청전·삼국지 등 조선후기 한글소설 방각본 공개 김민호 기자l승인2017.10.09l수정2017.09.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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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한글소설 목판으로 만든 일본식 보석함.

일제강점기 일본인 제작 추정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은 지난 2006년 '이로리'라 불리는 일본식 화로상자로 변형된 '오륜행실도' 목판을 공개했다. 또한 2008년에는 일본식 화로의 장식품과 분첩 뚜껑으로 훼손된 '한석봉 초서 천자문'과 '유충렬전' 목판을 공개했다.

귀중한 자료들이 제 모습을 잃고 훼손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소중한 문화재를 오리고 도려내 생활도구로 전락시킨 일본인 호사가들의 행위에 분노도 일었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 우리의 자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우리 스스로의 자괴감도 자리잡고 있었다.

한 관장은 다른 용도로 훼손된 귀중한 자료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국내외에서 이런 유물들을 수소문한 끝에 지난달 일본을 오가는 고미술상으로부터 20세기 초 일본 목제 보석함을 입수했다. 목판 5장으로 윗면과 옆면을 장식한 보석함에 새겨진 글씨는 분명 한글이었다.

한 관장이 조선시대 한글소설 전문가인 전북대 이태영 교수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 목제 보석함은 조선후기 제작된 방각본(坊刻本: : 일반 판매용 책) 한글소설 목판을 활용해 만든 뒤 주칠(朱漆)로 장식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문화재 수난사가 확인된 순간이다.

한글날을 열흘 정도 앞 둔 지난달 27일 고판화박물관이 공개한 보석함은 가로 14.5㎝, 세로 8.5㎝, 높이 7㎝ 크기로 윗면에는 영웅소설인 '소대성전'의 목판이, 옆면은 '초한전' 2장과 '삼국지' 1장, '심청전' 1장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 19세기 한글소설 목판으로 만든 일본식 보석함.

초한전·소대성전 목판 최초 발견 성과

보석함을 만들기 위해 훼손된 5개 목판은 조선후기 민간사업자가 상업적 출판을 위해 '방각본(坊刻本)'으로 제작한 희귀 자료들이다. 특히 초한전과 소대성전에 사용된 목판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에 따르면 방각본 한글소설은 50여종 200여 책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 책 당 목판이 여러 장 필요한 점을 감안한다면 수천여 점이 넘는 책판이 남아있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책판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보석함으로 변형된 목판을 분석한 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완판본 한글소설 목판 500여 점이 한국전쟁 때 불탄 것으로 보고되어 있지만 이번 보석함 사례로 볼 때 목판 일부가 일본까지 흘러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19세기 한글소설 출판 과정과 서체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물이자 훼손된 상태와 과정 등을 고려할 때 문화재 보존을 위한 교육적 가치도 크다"고 평가했다.

"한글의 조형미에 반한 일본인들이 목판을 잘라 각종 기물(器物)을 만든 것으로 우리 문화재의 수난사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한 한 관장은 "오는 27일 개막하는 제8회 원주 세계고판화문화제 특별전에서 일반 관람객에게도 보석함을 공개하는 한편, 목판의 훼손과 보존에 대해 한·중·일 3국을 비롯한 베트남, 대만 학자들과 국제 학슬대회를 열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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