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도 춥지도 않은 20일 저녁 원일로 인도에 걸터앉았다. 나는 댄싱카니발을 즐기러 온 게 아니다. 우리 조합원들과 함께 원주MBC 파업의 정당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러 온 거다. 공정방송, 단체협약 쟁취, 지역MBC 낙하산 철폐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쥔 손에 힘을 잔뜩 준다. 하지만 장양초등학교 어린이 댄스팀의 등장에 내 손은 피켓을 떠나 박수를 치고 있다. 박수 받을 만큼 잘했다.

 박수 칠 만큼 내가 즐거웠다. 그 순간 뜬금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방송 사실 별거 아닌데 박수와 비슷한 거 아냐" 누군가가 박수를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횟수만 치라고 강요한다면, 한술 더 떠 특정 팀에게 더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특정 팀에게는 박수대신 야유를 보내라고 강요한다면, 흥이 나는 대로가 아니라 지시받은 대로 박수를 쳐야 한다면, 축제는 끝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 똑같은 분량에 똑같은 틀의 보도만 허락한다면, 이런 사안은 긍정적으로 또 저런 사안은 부정적으로 보도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면, 그 지시를 거역할 수 없다면, 방송은 끝이다. 축제를 즐기는 시민은 더 잘한 팀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규칙을 어긴 팀이 있다면 불이익을 주고, 그렇게 엄격하면서도 어린이나 어르신 참가팀에겐 전문댄스팀 보다 조금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하길 바란다. 나는 그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파업하는 이유가 바로 상식으로의 복귀다. 우리는 기계적 중립 뒤에 숨지 않고, 공동체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엔 격려를 보내고, 권력을 등에 업고 반칙하는 이들을 찾아내 문제를 제기하고, 그러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그런 '공정방송'을 하고 싶다.
 

 원주MBC노동조합은 공정방송 여건을 만들기 위해 지난 4일부터 무기한 전면총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구호는 공정방송 회복과 지역MBC 낙하산철폐다. 공정방송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정치권의 낙하산이 서울MBC 사장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린 서울MBC 사장이 원주MBC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하는 것도 막아야 지역에서도 공정방송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MBC 사장이 아무런 공개적인 절차 없이 임명한 서울MBC출신 원주MBC 사장은 원주MBC와 서울MBC의 이익이 충돌할 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서울MBC 편을 든다. 서울MBC가 약속한 광고료를 덜 줘도 문제 삼지 않는다. 원주MBC의 장기적인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흑자를 내서, 3년만 버티면 된다. 이를 위해 제작비를 줄이고 인력을 줄인다. 유보금은 수백억이나 쌓아 놓고 쓰지는 않는다. 이런 경영기조가 10년 넘게 유지되면서 90년대 말 100명이 넘던 원주MBC 직원은 현재 4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공정방송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방송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은 더 이상 기우가 아니다. 자체 편성권한을 갖고 있는 영서남부지역의 유일한 지상파 방송사인 원주MBC가 존폐기로에 서 있다. 자칫 강원도내 최대 도시인 원주에 편성권 있는 방송사가 단 하나도 없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원주MBC노동조합은 우리 지역에서 공정방송을 하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 원주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비판적 지지를 보내오는 시민이야말로 파업이후 공정방송을 함께 만들어갈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차승헌 원주MBC노동조합 위원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