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립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필요성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라는 측면이다. 필자는 몇 해 전 일본 '21세기 가나자와현대미술관'에서 "가나자와 21c현대미술관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로 열렸던 학술콜로키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발표 내용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미술관'이라는 미션이었다. 이 미션은 고도의 정보화, 기계화된 사회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인간력(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필요한 총체적인 능력)과 풍부한 감성을 길러주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가나자와 21c현대미술관의 구로사와 히로 학예사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미술관이라는 미션은 아이들이 미술품을 보는 것을 넘어 그림과 놀고, 즐기고, 체험하며 '추억을 갖게 하는 것'이다"라고 프로젝트의 의미를 소개했다. 이를 위해 미술관에서는 가나자와시 교육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시내 초등학교 4학년은 의무적으로 미술관 관람과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하고, 시내에 있는 모든 초ㆍ중학생을 대상으로 특정기간에 무료로 미술관에 초대하여 미술관과 친숙해 질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필자가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에도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예술적 향유가 인격형성의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자와 21c현대미술관의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미술관'이라는 미션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의 대표적 성공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서울 '소마미술관'에서는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Nude'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적인 명작을 진품으로 감상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전시이다. 필자가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관람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관람객 중에서도 자녀의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작품을 보며 신기해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아이들은 이러한 전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미적 경험과 창의적 사고의 씨앗을 마음에 심었을 것이다.
 

 다소 맥락적 연계성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필자는 소마미술관에서 만났던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문득 원주시립미술관의 필요성을 떠올렸다. 원주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이런 미술관에서, 이런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동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향유의 지역적 편차가 너무 심한 것이 현실이다. 원주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문화향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술관은 미술인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미술관은 다감각적 인간력을 키우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다. 원주시립미술관 건립은 아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며, 풍요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공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역문화의 정체성과 역사의 보고(寶庫)'라는 측면이다. 지역의 미술관은 미술관의 고유 기능 가운데 특히 지역문화의 연구와 수집 그리고 보존기능이 중요하다. 오늘의 우리의 소박한 행적도 기억하고, 기록하고, 보존하면 역사가 된다. 그 역사는 문화의 자산이 되고, 문화관광콘텐츠가 된다. 이미 원주는 매우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10호 나전칠기 명장 일사 김봉룡 선생님과 무위서화(無爲書畵)의 새로운 경지를 여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비롯해서, 최홍원 선생님, 이재걸 선생님 같은 분들이 바로 원주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보존해야할 우리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들이시다. 우리가 지역의 귀한 자산들을 기억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누가해주겠는가? 이런 분들의 문화적 자취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보존하는 지역문화의 보고가 될 원주시립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
 

 최근 원주의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원주시립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 발족과 학술포럼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원주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김병호 조형예술학 박사.원주미협 자문위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