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영화·다큐멘터리 감독…소외계층 이야기 귀 기울여

장애인 지원기관에 근무하는 김샛별(가명) 씨는 시각장애인이다. 장애인 목욕탕 시설관리와 자원봉사자 관리가 그녀의 업무.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만족스럽게 사는 법을 터득 중이다.

하지만 시력을 점점 잃어 동료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런 그녀를 보고 동료들이 답답해하면 마음을 다치게 된다. 장애인을 돕는 직장에서조차 장애인 직원이 상처를 입는 모습에 샛별 씨의 부모님은 남몰래 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소식은 영화감독이자 다큐멘터리 PD인 서명택(49) 감독에게까지 전해졌다. 원더풀라디오에서 DJ를 맡고 있던 서 감독은 샛별 씨에게 DJ 일을 제안했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그녀에게 딱 맞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성우가 되는 것이 유년시절 꿈이어서 서 감독의 제안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라디오 DJ가 되려면 기본적인 디제잉 기술을 익혀야만 했다. 식탁 위의 반찬도 구분하기 힘든데 복잡한 라디오 엔지니어링은 태산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일을 하려면 부모님이 그녀 옆에서 온갖 수발을 들어야 했다. 옆에서 보던 서 감독도 디제이를 포기하겠다는 그녀의 결정에 말없이 수긍했다.

샛별 씨의 목소리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서 감독은 그녀에게 시 낭송을 권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시 낭송가 손은선 씨로부터 수개월간 훈련받고 샛별 씨는 각종 행사에서 시 낭송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서 감독은 그의 영화 '36.5㎒'(2015)를 통해 장애를 극복한 샛별 씨의 소박한 도전기를 담았다. 원주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각박한 사회 속에서 젊은 장애인이 꿈을 실현해가는 모습에 관객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장애인 부양의무제와 등급제의 폐해를 고발한 '아빠하고 나하고'(2014), 대형마트 진출로 인한 소상공인의 애환을 담은 '상생'(2012) 등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 감독은 "36.5㎒를 만들 때 샛별 씨와 부모님이 찾아와 고맙다며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영화감독을 선택해서인지 무언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원래 영상 일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에선 행정학을 전공했고 졸업해서는 직장생활도 하고 개인 사업도 했다. 사업은 근근이 이어갈 수 있었지만 4대가 사는 집의 장손이었던지라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했다. 그러다 21C에는 미디어 관련 직업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믿어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메고 영화를 만드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며 "그냥 쉽게 영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인권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감독의 관심은 항상 지역에 있다. 대형마트가 속속 진입하던 시절 원주 소상공인들의 모습(상생 2012), 일제로부터 지명을 빼앗겨 이를 되찾으려는 시민의 이야기(태장 그 혼(魂)을 찾아서 2014), 귀한 손님이 오신다는 귀래(貴來)의 전설(신(神)에게 길을 묻다 2016) 등을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짧게는 분기, 길게는 1년이 넘는 긴 작업임에도 우리 지역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늘 카메라와 함께한다.

그는 "원주 시민이 꼭 알아야 하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며 "가끔 서운한 마음도 드는데 그래도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뭉클함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향후 장애인 부모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을 예정이다. 부모가 장애인이기에 자녀들이 받는 편견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가난을 대물림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고 싶다고 했다.

때로는 "장애인 인권 영화를 만들면 누가 보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를 항상 응원해주는 부모님과 두 아들, 팬들이 있기에 그의 앵글은 늘 지역 소외계층을 향하고 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