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다리는 점심시간, 회사를 나서면 거리마다 즐비한 상점들 중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장애인들에게 사치로 느껴진다. 장애인이 탄 휠체어는 상점의 30cm 남짓한 턱을 넘지 못해 1시간 넘게 식당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전체 상점의 80~90%가 이런 실정이다 보니 이들에게는 원하는 메뉴를 골라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모두가 기다리는 점심시간, 회사를 나서면 거리마다 즐비한 상점들 중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장애인들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대학생들이 직접 경사로 설치에 나섰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보건과학대학 작업치료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창업동아리 'MLP(Make Level Paths)'와 작업치료학과 김종배 교수는 지난해 휴대와 설치가 편리한 이동식 경량 경사로를 제작했다. 편리한 휴대성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보급화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1층에 위치한 대부분의 상가는 턱 때문에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다(왼쪽).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작업치료학과 김종배 교수가 이동식 경사로를 시연하고 있다.

학생들은 원주 내 상점에 경사로를 무료 보급하기 위해 카카오 사회공헌 플랫폼 '같이가치'를 통해 300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모아진 후원금으로 올해 원주 내 상점 20여곳에 경사로 무료 설치를 진행한다.

학생들은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 김용섭)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했다. 경사로 보급 상점 선정 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경사로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원주 내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편의시설을 조사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매주 1회씩 지역 내 편의시설을 다니면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곳인지 직접 조사한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사로 설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김종배 교수는 "2018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30㎝의 기적'이라는 환경개선사업을 함께 추진하게 됐다"며 "원주뿐만 아니라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 정선, 강릉을 중심으로 이동식 경사로 설치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동식 경사로를 설치하면서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시설임에도 이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들은 단순히 경사로 설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접근성 문제 해결도 함께 고민하게 됐다.

장애인이 직접 만든 지도, 소통 창구 기대

지난 16일 시의회 모임방에서는 '장벽없는 세상지도 만들기'를 주제로 장애인 접근성 지도를 위한 커뮤니티 매핑데이 행사가 진행됐다. 연세대학교와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최했으며, 커뮤니티 매핑센터가 지도앱 플랫폼을 제공해 전반적인 행사를 이끌었다.

미국 메헤리의대 부교수이자 커뮤니티매핑인스티튜트 소장으로 재직중인 임완수 박사는 한국에 커뮤니티 매핑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주제와 범주로 지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장애인접근성 지도 만들기 과정은 간단하다. CPS 지도앱을 통해 각 시설 사진을 촬영해 올린 후 화장실 및 경사로 설치 여부 등 장애인접근성에 대한 정보를 올리면 된다.

이전에도 장애인접근성 지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큰 호응을 이끌어 내진 못했다. 이들이 외면 받은 이유는 지도 제작이 일회성으로 그쳤기 때문이다. 일정기간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한 데이터를 올린 후 추후 업데이트 없이 방치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장소가 폐쇄되거나 정보와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반면, 커뮤니티 매핑센터에서 개발한 플랫폼은 장애인들이 직접 정보를 올리고 상점이 폐점하거나 개선사항이 있을 시 이용자가 직접 업데이트를 실시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연세대 김종배 교수는 "지도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어 정보를 입력하고 업데이트하는 살아있는 지도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지도앱을 통해 장애인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사, 연세대 학생 등 30여명이 참석해 지도앱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임 박사는 1시간 가량 지도앱 사용법에 대해 강의했으며 참석자들은 지도앱 사용법을 숙지 후 인근으로 현장실습에 나섰다.

6~7명씩 조를 구성한 참가자들은 상점 곳곳을 방문해 직접 사진을 촬영하고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여부를 조사했다. 대부분의 상점이 1층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30㎝ 이하의 계단이나 턱으로 인해 휠체어 접근이 어려웠다.

3조가 방문한 시청 인근 안경점은 장애인들의 조사 방문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안경점 대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방문이 잦아 경사로 설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며 "이번 조사를 통해 이동식 경사로를 무료로 설치해 준다니 감사하다"고 전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현장실습에 참여한 최지원(뇌병변·지체장애) 씨는 "장애인 편의시설 조사를 수행할 때도 일부 업주로부터 냉대를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며 "장애인접근성 지도가 완성된다면 장애인들이 이런 불쾌한 일을 겪지 않고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동행한 이상권 활동보조사는 "평소 장애인들과 외출하면 편의시설 이용에 불편함이 많았다"며 "이번 지도가 상용화된다면 장애인 뿐 아니라 활동보조사나 가족들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지난 16일 열린 장애인 접근성 지도를 위한 커뮤니티 매핑데이 행사에서 이현수 씨가 참가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50분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시의회로 복귀한 참가자들은 지도앱 사용 후기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이현수(지체장애) 씨는 "곳곳을 휠체어로 돌아다니며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지도를 제작할 수 있어 뿌듯했다"며 "상용화 된다면 우리 동네 정보부터 차근차근 업데이트 해 많은 장애인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임완수 박사는 "지도앱 플랫폼이 제대로 구축이 된다면 장애인을 비롯해 누구나 지도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며 "올림픽 이후에도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도앱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와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원주를 비롯해 평창, 정선, 강릉에서도 커뮤니티 매핑데이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올림픽 전까지 개최지 세 곳과 배후도시인 원주를 포함해 장애인접근성 지도앱을 제작하며, 외국인 관광객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영어서비스도 준비할 예정이다. 지도앱은 커뮤니티 매핑센터가 진행중인 구글 공모사업 '장벽없는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 예산을 통해 제작된다. 
 

박수희 기자  nmpry@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