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대금을 전공하는 손자 강병하(한예종1) 군, 강성태 매지농악보존회장, 강영구 매지농악전수관장.

조(祖)·부(父)·손(孫)·증손(曾孫)까지 4대에 걸쳐 전통 국악의 맥을 잇고 있는 집안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원주매지농악보존회 강성태(75) 회장 일가가 그 주인공이다.

강 회장 가계의 내력은 이미 유명하다. 흥업 인근에서 새납(태평소)으로 명성이 높았던 강 회장의 부친 고 강주옥(1988년 작고) 선생을 시작으로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8호 원주매지농악 기능보유자인 강 회장. 그리고 강 회장의 차남이자 매지농악 전수조교인 강영구(48) 매지농악전수관 관장까지 3대를 이어 매지농악 전승보존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강 회장의 손자이자 강 관장의 아들인 병하(18) 군이 제33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대금부문 일반부 금상을 수상(본보 7월 10일자 5면 보도)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강 회장의 가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고 강주옥 선생부터 증손자인 병하 군까지 한 집안 4대가 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해금을 전공하는 강 회장의 친손녀와 민요전공인 외손녀까지 포함하면 강 회장을 중심으로 4대에 걸쳐 6명의 국악인을 배출한 진정한 국악 가족인 셈이다.

특히 다루는 악기는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높은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원주매지농악이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기틀을 마련하고 수 많은 후학을 배출한 강 회장이야 두 말 할 것도 없고 전수조교인 강 관장 역시 조부와 부친에게 어려서부터 새납과 꽹과리를 전수 받아 14세 때 농악대 일원으로 활동했을 만큼 남다른 재주를 발휘했다.

1987년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당시 16세의 나이로 개인 연기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고, 뛰어난 기량을 높이 산 경기도 남사당 농악대 등 각 지역 농악대에서조차 그의 새납 기능을 전수받으려 한 일화는 유명하다.

강 회장이나 강 관장 모두 남에게 드러내는 성품이 아니어서 뒤늦게 알려지긴 했지만 국립예술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에서 대금을 전공하는 병하 군의 이력 또한 할아버지나 아버지 못지 않다.

중학생이던 2012년 종로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기악 중등부 장원과 죽향학생전국국악대전 중등부기악 대상을 수상했으며, 고교에 진학한 후에는 경기국악제 전국학생경연대회 기악 대상,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관악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참가하는 대회마다 남다른 기재를 과시했다.

진짜는 진짜가 알아보는 법이다. 지난 20일 유럽공연을 위해 출국한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동행할 대금 연주자로 병하 군을 선택한 것만 보더라도 그 실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정도면 동네방네 자랑할 법도 하지만 출국 이틀 전인 지난 18일 회촌 매지농악전수관에서 만난 병하 군은 또래들과는 달리 겸손하다. "아직은 어리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주위에서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 병하 군은 "일단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열심히 하는 국악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 목표나 미래는 그 뒤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이들의 인생 멘토이자 선배이며 스승인 강 회장은 이런 아들과 손자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자신의 그늘에 있던 아들과 손자가 같은 국악인의 길에 들어서 자신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선친과 자신, 아들, 손자까지 4대가 국악인의 맥을 잇게 된 것이 60년을 걸어 온 지난 발걸음에 대한 선물 같아 더욱 반갑다.

수 많은 제자를 길러 낸 강 회장이지만 "아들과 손자에게는 단 한 번도 이 길을 강요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농악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마을 분위기와 늘 전통악기를 가까이하는 집안 환경이 자연스럽게 같은 길로 이끌었지 않았나 싶다"고 밝힌 강 회장은 "대부분 1세대들만 남은 타 단체에 비해 그래도 매지농악은 맥을 잇고자 하는 젊은 새대들이 있어 미래가 밝다"고 했다.

강 관장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은 지역 인재들의 몫으로 남들이 대신 해주진 않는다"며 매지농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강 관장은 "선대에서 전승 체계를 갖췄다면 이제는 국악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