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을 곁에 끼고 살았던 피붙이를 대학 졸업과 동시에 타향으로 떠나보낸다. 사회인으로, 여성으로, 대한민국 땅에 두발을 '굳게' 딛고 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회와 조직에서 수십 년을 느껴왔던 각종 '불균형'을 이 독립심 강한 '여성'이 답습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여성은 단체 활동을 통한 네트워크 능력을 남성보다 훨씬 많이 수 백 만년 동안 DNA속에 축적하였으며, 따라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감을 기초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여 있다. 이제 더 이상은 여성을 근력 좋은 남성이 보호해야 하는 단순한 대상으로 보는 시대는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는 점점 늘어만 간다.

 1995년 '여성' 피해자 비율은 72.2%에서 2014년 87.2%로 증가하였다. 이러니 뉴스에 유사범죄가 보도라도 되는 날엔 하루 종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안전하게 '그녀'가 귀가했는지 연락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연구 자료를 찾다가 원주비전 2020 속에 반가운 문구 하나를 발견하였다. '여성친화도시, 원주' 여성친화도시(Woman Friendly city)는 우리나라에서 2009년부터 지정하기 시작해 올해 초 기초지방자치단체의 1/3인 76개 지역으로 확대됐으며, 원주는 2013년에 지정됐다. 여성친화도시는 지역정책과 발전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여성의 역량강화, 돌봄 및 안전이 구현되도록 정책을 운용하는 지역에 대해 여성가족부장관이 매5년마다 재 지정하게 되어있다.
 

 여성 친화도시의 탄생 배경은 1973년 독일에서 연쇄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했고, 이에 영국, 벨기에, 미국, 캐나다 등에서 거리행진의 형태로 확산되었다. 도시 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라는 점을 강하게 대두하였으며, 당시 여성들에게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과 공간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한 것이 여성친화도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Take Back The Night, Reclaim The Night, Flyby Night",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 보도 당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달빛 아래, 여성들이 밤길을 되찾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전국으로 진행되었다.
 

 모든 범죄는 테러와 닮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두려움을 이용해 피해자를 만들어 낸다. 범죄의 대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그 대부분이 신체적, 물리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부산 길거리 무차별 각목 폭행사건',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 '사패산 등산로 살인사건' 등은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잇따른 강력범죄였다. 이러한 잇단 사건들로 인해 정부 역시 여러 대책을 내어놓았다. 전문가들은 '범죄예방 환경 설계(CPTED)'를 근본 대안의 하나로 제시한다.
 

 서울시 동작구는 자치구 최초로 범죄예방디자인 전담팀을 구성하여 지난해 전년 대비 28%의 범죄율을 감소시켰으며, 그 결과 대한민국 범죄예방분야에서 대상을 받았다. 바로 '범죄예방 환경 설계'를 시행한 결과이다.

 '범죄 없는 안전도시'를 강력하게 추진, 지역 내 건축물과 도시공간에 범죄예방 디자인을 적용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소규모 건축물 범죄예방설계 세부기준'과 '주택사업지 범죄예방환경설계 적용 가이드라인' 마련, 이를 바탕으로 동작경찰서 범죄예방 진단팀과 협업을 통해 동별 범죄현황과 취약지역을 파악하고 위험지수별로 사업 우선순위를 정해 범죄안전마을, '스파이더범죄 예방마을' 등을 완료하였다. 이밖에도 여성안심거울길, 골목길 LED 가로등, 그림자 조명 등 지역이나 골목 특성에 적합한 시설 설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초 여성친화도시로 정부가 포상한 지자체의 주요 공적 중 여성안심과 관련한 내용을 보면, 부산사상구의 아동안전지도·여성안심귀가길조성, 인천부평구의 골목길안전 편안한 발걸음 500보 사업, 경기 의정부시의 여성안심무인택배, 안심귀가 '수호천사' 서비스 시행 등을 들 수 있다. 원주시는 2018년까지 5년간 65개 사업에 643억 원을 성평등 정책, 경제사회적 평등실현, 일·가정양립, 건강·안전·가족친화사업 등에 사용한다고 한다.
 

 원주시는 건강도시, 안전도시 구현을 대표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외침에서,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스스로가 '안전'한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일까.

전영주 상지대 호텔컨벤션학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