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동·단계주공아파트에는 30년 이상 된 나무 7천400그루가 있지만 재건축으로 폐기처분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식비용 부담으로 전량 폐기처분 예정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15일 단계주공아파트 안팎에는 꽃비가 내렸다.

솔솔 부는 봄바람에 이곳을 오가던 행인들은 발걸음을 멈춰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했고, 연인들은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봄에는 벚잎, 가을에는 은행잎이 단지 곳곳을 수놓아 삭막한 도심에서 숲속 정원을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아파트에는 30년 이상 된 유실수와 조경수 7천400여 그루가 있다.

하지만 내년이면 이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갈 판이다. 1984년 준공된 단계주공아파트가 재건축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합원 분양절차를 밟고 있으며, 이 과정이 끝나면 관리·처분과 착공 절차로 이어지게 된다.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입찰을 통해 나무들을 모두 처분할 계획"이라며 "큰 나무들은 이식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모두 처분하고 다시 식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동주공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1987년 준공돼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곳에도 2천주 가량의 수목이 단지를 감싸고 있다.

아파트 건립당시 상당수 나무를 그대로 두고 아파트를 지어 도심속 숲 아파트로 명성이 높았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그늘이 되고 바람막이가 되어준 고마운 존재였는데 재건축 사업으로 처분이 불가피해졌다. 

사람들이 떠나면 이 나무들은 어떻게 될까. 법적으로 재건축 부지 내 수목은 조합측 사유재산으로 취급된다.

조합과 시공사의 결정에 따라 나무의 생사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만 나무 이식비용이 비싸고 재활용 과정이 복잡해 대부분 폐기·처분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수령이 30년 넘은 나무들은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면서 "건축심의·도시계획심의 등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 의지만 있다면 나무들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정비사업 부지가 30만㎡ 이상 돼야 수목보존 방안을 수립할 수 있다.

단계주공아파트 정비구역 면적은 8만5천410㎡, 원동주공아파트는 6만4천963㎡여서 적용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나무 한 그루당 이식 비용이 100만원 가량 소요돼 원주시가 나무 이식을 위한 독자적인 재원을 마련하기도 녹록지 않다.

원주시 관계자는 "호저면과 반곡관설동에 나무은행을 운영 중인데 일년 예산이 5천만원에 불과하다"며 "재정 여건상 수천 그루의 나무를 재활용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원주시는 각종 개발사업을 통해 도시 곳곳에 공원과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다.

시공 중인 아파트 단지만도 지난 2월 기준 18곳이나 된다.

개발사업 시기와 수목 식재 규모를 조정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로 인해 폐기될 처지에 놓인 나무들을 살릴 수 있다. 

원주시 관계자는 "단계동 어린이공원 조성을 위해 재건축 조합과 느티나무 이식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며 "각종 개발사업의 시기를 맞출 수 있다면 재활용이 불가능 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유재산인 수목을 원주시에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넘기느냐에 따라 재활용 여부가 갈린다는 점은 조합이나 원주시, 또는 다른 개발사업자들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남고 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