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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 단편 '옛날이야기' 전문

1967년 5월 '신동아' 통해 발표 원주투데이l승인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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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투데이신문사는 (재)토지문화재단이 오는 27일 오후7시30분 시립중앙도서관에서 선보이는 낭독공연을 앞두고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 박경리 선생의 단편소설 '옛날이야기'를 게재합니다.

'옛날이야기'는 1967년 5월 '신동아'를 통해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지방 여학교 소사로 일하던 노인이 손녀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해주는 액자구성을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노인이 겪은 사건은 소설 '토지'에도 행위주체가 드러나지 않은 소문으로 등장합니다. 소설 속 많은 인물들에게 회자되면서 반일 학생운동의 하나로 일제에 저항하는 희망으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옛날이야기
 

박경리 작


긴 아래쪽에서 새까만 세퍼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송아지만 하게 덩치가 크고 힘이 세어 보였다. 가죽줄을 팽팽하게 잡은 청년은 좋은 날씨에 몹시 기분이 상쾌한 듯 휘파람을 불며 개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다 해진 멍석 위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던 심노인은 휘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햇빛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며, 진이는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공기받기를 하며 혼자 놀고 있었다.

“아서라. 손 튼대두.”

“심심해 죽겠는걸 뭐.”

진이는 단발머리를 짤짤 흔들며 할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했다.

진이 옆에는 새끼 고양이가 조그마한 공을 굴리며 앙증스럽게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학교 가는 길에서 진이가 주워온 탁구공이었다. 고양이는 흰 바탕에 검정 얼룩이 진, 아주 가엾게 여윈 놈이었다. 그러나 다정한 봄볕은 그 눈빛처럼 흰 털에 흡족히 내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무서운 세퍼드가 올라오는 것도 모르고 길편으로 굴러가는 공을 따라 정신없이 달려간다.

다음 순간, 물어뜯는 듯한 세퍼드의 울부짖음과 씨익! 하는 고양이의 날카롭지만 가냘픈 도전의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진이는 용수철같이 일어섰다. 쏜살같이 달려간 진이는 목덜미의 털을 곤두세우며 미친 듯 으르렁거리는 세퍼드 앞에서 고양이를 낚아채 가슴에 안았다. 개줄을 힘껏 잡아당기느라고 얼굴이 시뻘개진 청년은 어색한 웃음을 띠며,

“묶어서 괜찮어.”

했다.

그러나 파랗게 질린 진이는 노여움에 가득 찬 눈으로 청년을 쏘아본다.

“여기 개 데리고 오지 마세요!”

대등한 어른처럼 진이의 어조는 당당하고 엄격했다.

“진아, 어른한테 그러는 게 아니다.”

뒤에서 나무라는 심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거 참.”

청년은 화가 나서 중얼거리다가 개줄을 거칠게 흔들며,

“앞으로 가!”

청년과 세퍼드가 진이 앞을 지나 저만큼 갔을 때, 진이는 재빨리 돌을 주워 개를 겨냥하여 팔매질을 했다.

“아서!”

할아버지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이놈의 똥개야! 또 오기만 해봐라! 죽여버릴 테다, 죽여!”

고함을 치며 진이는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한다. 진짜 골이 난 청년은 눈을 부릅뜨며 돌아보았다.

“진아 아서!”

심노인의 말에 청년은 침을 콱 뱉고 걸음을 빨리 했다. 그들이 언덕을 향한 꼬부랑길을 거의 올라섰을 때 진이는 다시 한 번,

“똥개야! 이놈의 똥개야! 죽여버릴 테다! 죽여!”

하며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했다. 그리고 메아리가 돌아왔다.

심노인은 진이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이가 다 빠진 입을 벌리고 웃는다.

“여식애가 지애빌 닮아서……”

반항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가엾어라. 우리 나비, 하마터면 그 도둑놈의 개한테 물려 죽을 뻔했지…… 할아버지?”

진이는 고양이를 안고 심노인 곁으로 왔다.

“나비가 떨고 있어. 가슴이 벌떡벌떡 뛰고 있단 말이야.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데 별안간 눈에 눈물이 가득 괸다.

“걱정 마라. 죽기는 왜 죽냐!”

손등으로 눈물을 씻는데 흙 묻은 손이어서 진이 얼굴에 얼룩이 졌다.

사방은 산이었다. 나무 없는 발가숭이 산. 청년이 개를 몰고 올라온 길을 한참 내려가야만 동리가 있고, 양옥집도 있고 진이가 학교 가는 신작로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골짜기에는 진이네 집이 한 채 있을 뿐이다. 울타리 없는 외딴 집, 흙벽을 치고 지붕을 덮은 것은 깡통을 이어서 만든 함석이었다. 지나간 겨울,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지붕을 눌러 놓은 돌이 날아가는 바람에, 식구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이제 봄이 오기는 왔지만 장마철은 무사히 갈까.

아까 청년이 개를 몰고 가던 꼬부랑길을 올라서면, 심노인의 외딴 집과 비슷한 집들이 그 등 아래 더러 있었고 천막집도 띄엄띄엄 있기는 있었다. 아마 지금쯤 그 청년은 능선을 따라 지나가면서, 그 누더기 같은 집들을 내려다볼 것이다.

진이는 고양이를 안은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다시 공기받기를 시작했다.

“해도 길다.”

심노인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꼬부랑길을 바라보고, 다음 산관(山官)의 눈을 피해 밤에만 일구어 놓은 밭에 눈을 준다. 그리고 헛기침을 한다.

불기 없는 방안보다 오늘 같은 날은 밖이 훨씬 따뜻했다. 날씨가 풀리면서부터 연탄을 끊고 가을에 거둬다 놓은 가랑잎, 마른풀로 저녁이면 군불도 지피고 밥도 끓이는 처지고 보면, 화창한 날씨는 노인에게 자비로운 것이다.

공기받기를 다시 시작하기는 했으나 김이 샌 것처럼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진이는 고양이를 안은 채 아랫동리에서 올라오는 오솔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오려면 이 골짜기에서 햇빛이 사라지고, 그러고도 엉성하게 몇 그루 남아 있는 소나무 가지에 희미한 별이 한두 개씩 돋아나는 무렵이 되어야만.

“할아버지.”

진이는 지쳤는지 고양이를 놓아주고 멍석 위에 와서 털썩 주저앉으며 코먹은 소리를 냈다.

“또 왜 그러니?”

“심심해 죽겠어.”

“공부나 하려무나.”

“치이…… 내일은 일요일인데 뭐.”

“…………”

“할아버지.”

“…………”

“할아버진 배 안 고파?”

“배가 고프긴…….”

“너 배 고프냐?”

“할아버지, 그때 말이야.”

진이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때 말이야, 나 학교 입학했을 때 돌아옴서 아버지가 단팥죽 사주었어.”

“…………”

“도나츠도 사주었어. 참 맛나든데……”

“먹고 싶으냐?”

그 말 대답은 없이,

우리 반의 금례가 말이야, 오늘 수수팥떡 가져왔어. 애기 돌떡이래. 그런데 영자하고 사탕 바꿔 먹잖아?

심노인은 슬그머니 외면을 한다.

“영자 그애네 가겐 사탕도 팔고 과자도 팔고 오징어도 있어.”

진이는 침을 삼키며 먹는 이야기만 자꾸 했다. 심노인은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진이는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는 것을 깨달았던지, 그러나 심술을 피우듯 심노인을 떠밀며,

“옛날 얘기 해, 할아버지.”

들을 흥도 안 나면서 공연히 졸랐다.

“무슨 얘기를 할꼬? 서울서 온 비단 장수 얘기 해주랴? 도깨비하고 씨름한 얘기 해주랴?”

“싫어, 안 들은 것.”

“있어야지. 얘기 주머니를 다 털어놨는데.”

“싫어잉! 안 들은 얘기 해.”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진이는 떼를 썼다.

고양이는 김칫독 위에 올라가서 졸고 있었다.

“그래그래 해주마. 옛날 옛적에 음, 뭘 한다? 가만히 있자, 음 그래, 할아버지가 똥 싼 얘기 해주마.”

“할아버지가 똥 쌌어?”

울먹이던 얼굴에 금시 웃음이 퍼졌다. 심노인은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옛날, 그러니까 일제 시대의 얘기로구나. 그때 진이 할아버지는 어느 지방 여학교에 있었단다.”

“여학교에? 할아버지가 선생님이었어?”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소사 아저씨였었지.”

“기껏 소사 아저씨야?”

진이는 실망한다.

“그래도 그 시절엔 그것도 여간 어려운 자리가 아니었단다. 지금보담 살기가 편했지. 그때는 너 애비도 남부럽잖게 공부도 하고. 하긴 진이 애빈 공불 잘해서 소학교 졸업 때는 도지사 상을 받았고, 사범학교에서 나랏돈으로 공부했지만 참 똑똑하다고들 칭찬을 많이 들었다.”

심노인 눈에 눈물이 어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었는데 뭐.”

“그래 죽었지. 그 불효자식이 애빌 남겨놓고…… 죽고 지금은 그놈이 없다. 너 애빌 기를 때 나는 그 애가 커서 판사도 되고 검사도 될 줄 알았다.”

“건데 할아버진 왜 똥을 쌌어?”

“가만히 들어봐라. 차근차근 얘기할 것이니. 그러니까 진이 애비가 졸업반이었던 해의 얘기로구나. 왜놈이 손들기 바로 전 해였으니 막 망해 가는 판이었거든.”

“왜?”

“그놈들은 우리나라를 먹고 욕심을 부려서 중국까지 먹으려고 덤비다가 미국하고 싸움이 붙었거든.”

“미국한테 못 이기지, 그지?”

진이는 심노인의 무릎을 짚고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아암 못 이기고말고, 호랭이하고 쥐가 싸우는 격이지. 그래 왜놈들은 반미치광이가 되어 가지고, 다 죽인다고 대창까지 만드는 판이었지. 사내새끼들은 모조리 전쟁터로 보냈지. 내가 있던 여학교만 해도 공부는 안 시키고 밤낮 군인이 입는 옷이랑 양말이랑 장갑을 만들었는데, 그래도 모자라서 병원으로 끌고 가서 간호부 공부까지 시켰단다.”

“그건 왜?”

“일선에서 군인들이 총 맞으면 여학생들이 가서 약도 발라주고 붕대도 감아주고 그럴려고 그랬지.”

“건데, 할아버지는 왜 똥을 쌌어?”

“가만히 듣고 있어. 차차 그 얘기도 나올 거다.”

“빨리 해줘. 졸려.”

“졸지 말고 들어라. 너 애비가 얼마나 훌륭한 가 너도 알아 두어야 하느니라. 한편 남자학생들은, 그곳 근처에 비행장을 닦는 데 모두 그 근로봉사에 끌려갔었지. 그러니까 자연 그곳에 합숙을 하게 되고 일이 벌어진 거지. 그게 뭔고 하니, 합숙소 변소간에다 조선독립만세라는 낙서를 누가 썼더란 말이다.”

심노인은 이야깃거리가 없어 난처해하던 아까와 달리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이는 졸린다 하며 심노인 팔에 머리를 기대었다.

“졸지 말고 들어라. 그래 발칵 뒤집혀졌지. 헌병들이 낙서한 학생을 찾느라고 여간 소동이 아니었단다. 필적 검사를 한다, 그럴싸한 학생들을 불러들여 뚜딜겨 팬다, 유치장에 처넣는다, 그뿐인가? 총살을 한다고 으르렁대고. 그러나 결국 낙서한 학생을 찾지 못했단 말이야. 나도 어지간히 속을 태웠지. 그 소문을 듣고 진이 애비가 당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그래 그애는 무사히 교대하는 바람에 집에 돌아왔지. 그런데 어느날 밤 그놈이 애빌 보고 얘기를 한단 말이야. 변소간에 낙서한 학생은 자기였노라고. 가슴이 섬뜩하더군. 그애 말이, 저도 많이 맞고 그러나 친구들이 맞을 때는 하마터면 내가 했다는 말이 나올 뻔했다는 거지. 그놈은 말하기를, 아버지 나 죽는 게 무서워서 말 안한 건 아닙니다. 나는 또 그 짓을 할 작정입니다. 이 사건은 극비로 되어있지만 이미 소문은 퍼지지 않았습니까. 맞은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리가 있나요? 우리가 총칼 앞에서 어떻게 싸웁니까? 다만 그런 방법이나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서 그놈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해주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우리 동포들 가슴에 울분을 끓어오르게 해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굴 위해 비행장을 닦고 군복을 짓고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겁니까? 그놈은 그러더구나. 그러나 이 할애비는 반대했다. 사생 결단코 반대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자식을 잃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더군. 그러나 그놈은 들어 주어야지. 막무가내야. 할 수 없이 나는 작정을 했다. 그리고 말했지. 이놈아! 애비보다 먼저 죽으려는 이 후레자식아! 내가 본때를 보여주마. 그런 짓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먼저 해서 네놈보다 먼저 오랏줄에 묶여 가겠다. 그러나 너 애빈 조금도 기세가 안 꺾이고…… 할애비는 며칠을 꿍꿍 앓으면서 궁리를 했지. 너 애비처럼 변소간에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서투른 짓인 것만 같단 말이야. 필적을 보면 단박 알아차릴 것 같고. 그런데 마침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할애비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지. 그날은 캄캄한 그믐밤이었다. 코를 집어도 모르게스리 캄캄한 밤이었어. 바람이 으쓱으쓱 불더구나. 마음이 떨려서 바람소리가 더 귀에 거슬렸는지도 모르지. 할애비는 여학교 뒷문을 넘어 들어갔지. 뭐 여학교 내부사정이야 내가 뻔히 아니께, 넓은 운동장을 질러서 가는데 참 그믐밤이어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고 자꾸 중얼거리지 않았겠니. 아마 겁이 나서 그랬던 게지. 이윽고 호안뎅(奉安殿)으로 갔는데, 그 호안뎅이라는 것은 왜놈 천황폐하의 사진인가, 조꾸고(勅語), 조꾸고라는 것은 천황폐하가 내린 글이지, 무슨 식이 있을 때마다 교장이 흰 장갑을 끼고, 죽는 시늉을 하며 벌벌 떠는 목소리로 읽은 건데, 그 조꾸고라는 것을 아마 모셔둔 모양이야. 거 뭐 굉장히 어마어마하게 위해 바치는 곳인데, 할애비는 그 호안뎅 돌층계를 슬금슬금 올라갔지. 귀신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칼 찬 순사가 뛰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땀이 쏟더군. 겨우 호안뎅 문 앞에까지 가서 할애비는 엉덩이를 까고 똥을 쌌단 말이야. 똥을 싸고 일어서니 거참 이상하더구먼. 지금까지 무섭던 생각은 다 달아나고 속이 후련하더란 말이야. 삼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어디서 기운이 나는지 막 발길로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서 마구 행패를 부리고 싶더군. 그때 기분은 꼭 술 취한 사람같이 간덩이가 커지고, 한참을 울분을 참고 서 있느라니까, 눈물이 울칵울칵 쏟아지면서 왜놈들한테 받은 구박이 뼈에 사무쳐 오더구나. 적어도 우리 선친께서는 의병(義兵)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자식인 내가 원수놈 밑에서 종질을 하고 갖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오다니, 눈물이 자꾸만 쏟아지겠지? 그날밤, 그러니까 한밤중이지. 집에 돌아와서 잠든 너 애비를 뚜디려 깨워서 할애비는 말했지. 내가 호안뎅 문 앞에다 똥을 싸놓고 왔노라고. 너 애비 얼굴이 호박꽃같이 노오래지더구나. 아버지 어쩔려고 그러셨어요? 하지 않겠니. 어 이 녀석이, 음? 잠들었네?”

심노인은 긴 이야기를 끊고 깊이 잠든 진이를 무릎 위에 눕힌다.

“으응응? 녀석이 할애비 얘길 안 듣고 으응응……”

심노인은 신이 나서 한 얘기가 전혀 독백으로 그친 것이 퍽 섭섭한 모양이다. 입담이 좋아서 평소에도 얘기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의 이야기야말로 차츰차츰 꺼져 가는 그의 기력이 마치 봄풀같이 소생한 듯 열정과 흥분에 찬 것이었는데. 그러나 사방은 괴괴하고 진이는 시장기에 지쳐 잠들어 버렸으니 천지에 뉘를 보고 지껄였을까. 심노인은 허망한 생각만 들었다. 심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꼬부랑길을 바라보고 밭을 건너다보았다. 골짜기에서는 차츰 햇볕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녀석을 방에 눕혀야겠는데……”

심노인은 진이를 안았다. 진이는 새끼 고양이처럼 몸집이 작고 여윈 아이였으나 심노인에게는 힘에 겨웠다. 작년보다 기력이 준대다가 아무래도 진이는 작년보다 자랐으니까.

방으로 들어간 심노인은 낡은 담요에다 진이를 둘둘 말아서 눕혀놓고 밖으로 나왔다. 허리를 두드리며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진이 애비만 살았어도……”

재작년에 폐결핵으로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해방이 되었을 때 그애는 한자리 할 거다 생각했지. 그런데 그 애는 골병만 들고…… 겨우 살아보려고 했을 때 죽었다. 그만 죽었다.”

“아버지 저는 이제 장사나 해먹고 살겠어요.”

포로석방 때 반공포로로서 나온 아들이 한 말이었다.

“진작, 진작 장사나 했던들 네가 죽었겠나.”

심노인은 부지깽이로 가랑잎을 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생각을 잘못한 것은 비단 아들뿐만 아니었다. 심노인 자신 역시 아들이 한자리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태극기가 물결치고 만세소리가 산천을 울리던 해방된 그때.

심 노인은 그때, 아들이야말로 변소 간에 조선독립만세를 쓴 바로 그 장본인이요, 호안뎅 앞에 똥을 싼 사람은 바로 나였노라고 외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젊은 소사 놈이 그 사건으로 하여 매를 맞고 경찰서에도 잡혀가고 그런 경력 탓으로 해방이 되자마자 그는 영웅이 되었다. 심노인은 오십이 다 된 늙은이였기 때문인지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자 스스로도 똥을 싼 것은 바로 나였노라고 큰소리를 치게 되었던 것이다.

“아아, 뭐라고? 그놈이 똥을 싸? 당치도 않은 소리. 또, 똥을 누가 쌌는데? 내, 내가 한 짓, 내가 쌌단 말이야!”

심노인은 젊은 소사에게 대어들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변명을 했으나 그럴수록 심노인은 불쌍한 늙은이, 음흉한 늙은이로 빈축만 사게 되었던 것이다. 먼 시골에서 소학교 선생으로 가 있던 아들이 돌아왔을 때,

“세,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그 죽일 놈이.”

흥분한 심노인이 아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거 참…… 남 듣기 거북하군요. 괘씸하지만…… 그만두시지요.”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심노인은,

“이놈 어디 두고 보자. 나한테는 한자리 할 아들이 있다. 나중에 니깐놈은 설설 기고 말테니.”

우리는 누굴 위해 비행장을 닦고 군복을 짓고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겁니까 하며 열기띤 얼굴로 심노인을 쏘아보던 아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심노인은 울분보다 흐뭇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 아들은 서울로 올라갔다. 정치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좌경(左傾)해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6.25 전에 투옥되었고, 6.25와 더불어 그는 다소 활약을 하다가 의용군에 나갔다.

반공포로로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 저는 이제 장사나 해먹고 살겠어요.”

아들은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아들은 이북서 혼자 피난은 여자하고 결혼을 하고, 블록 찍는 인부로부터 시작하여 조그마한 물역상(物役商)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진이도 낳고 생활이 틀에 잡혔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아들은 폐결핵으로 몸져 눕고 그간의 험난했던 생활의 여독은 그에게서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던 것이다.

그는 오랜 병석에서 찢어지는 가난 속에 가족들을 남겨놓고 갔다.

심노인은 불을 다 지핀 뒤 아궁이 앞을 쓸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우두커니 서서 내리막길을 바라본다.

“하마 올 때가 됐는데……”

했을 때, 마침 어둑어둑해 오는 내리막길에 진이 엄마가 나타났다.

“오는구먼.”

며느리는 한 손에 보따리를, 한 손에는 한 되들이 병이 두 개 든 광주리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끼 고양이가 앞에 와서 야옹 하고 울었다. 진이 엄마가 와야 먹을 것이 생긴다는 것을 고양이는 알고 있었을까.

“시장하셨죠.”

“아니, 뭐.”

“진이는 어디 갔어요?”

“방에서 잔다.”

심노인은 며느리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날씨가 좀더 풀려야 밭에 씨앗을 뿌릴 건데……”

하며 밭 있는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늙은 몸이지만 온종일을 그냥 보낸 것이 미안해서 하는 소리 같았다.

“좀 더 따뜻해지면 씨앗 사오지요. 오늘은 운수가 좋아서 외상도 많이 걷고 기름도 다 팔렸어요. 그래 쌀 팔면서 고기 조금 사왔죠.”

며느리는 보따리를 들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간다.

심노인은 기웃이 부엌 안을 들여다보며,

“금년에는 병아리나 몇 마리 길렀음 좋겠는데……”

며느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부엌에 따라 들어온 고양이는 신문지에 쌓인 고기를 쳐다보며 처량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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