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독립운동사 연구…역사속 묻혔던 애국지사 48명 발굴

원주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세 차례의 의병전쟁을 전개했던 유일한 지역으로 독립운동의 서막을 열었던 애국의 고장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에는 안창에서, 을사늑약이 이뤄진 1905년에는 주천에서 의병이 봉기했다. 일제가 군대를 해산한 1907년에도 원주 진위대와 지역 주민들이 전국적인 의병항쟁을 주도했다.

1919년 원주전역에 항일 독립의지를 전파한 부론만세운동은 물론, 횡성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소초만세운동을 통해서도 이름 없는 수많은 원주사람들이 목숨을 내어놓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다.

당시 원주출신이거나 원주를 무대로 활약한 독립유공자가 100명이 넘는다. 단일 도시로는 경북 안동 다음으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지역이다. 광복회 원주연합지회와 항일독립운동 원주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1949년부터 지금까지 원주에서 항일운동을 통해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받은 애국지사는 모두 54명이다. 원주가 애국애족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흘러버린 시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선조들의 '애국혼'이 다시 조명 받기까지는 윤기영 의병장의 증종손인 윤병진(58·원주문화원 사무국장) 광복회 원주연합지회 부회장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1996년부터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든 그가 발굴한 애국지사는 횡성만세운동 현장에서 순국한 하영현(미상~1919, 건국훈장 애국장) 지사를 비롯해 소초만세운동을 주도한 신현철(1892-1943, 건국훈장 애족장) 지사와 을미의병운동에 참여한 원용정(1860-1907, 건국포장) 지사 등 48명에 이른다. 이들 중 18명이 공적에 따라 국가로부터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 등 서훈을 받았으며, 나머지 30여명도 서훈을 신청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윤 부회장이 독립운동사 연구를 시작한 것은 선조인 윤기영 의병장의 명예를 찾아야 한다는 부친 윤광용(86·전 아카데미극장 전무) 씨의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됐다.
롯데칠성 주류사업부 원주지점장으로 근무하다 사직 후 잠시 여유가 있던 윤 부회장은 부친의 뜻에 따라 1996년부터 독학으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고 국회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사료조사에 나섰다.

"잊혀진 역사 찾고
 잘못된 역사 바로 세우기
 뜻 있는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길 기대"

수많은 논문과 각종 사료들 속에서 관련 자료를 찾는 작업은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일이었지만 그는 힘이 들 때마다 "의병장의 자손으로서 후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이소응 의병장의 '습제집'에서 윤 의병장과 관련된 결정적인 근거를 찾아냈고, 결국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을 수 있었다.

선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한번 관심을 갖게 된 독립운동사 연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의병활동을 조사하면서 원주에 수많은 애국지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변변한 기록이나 자료 하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 때부터 애국지사 발굴에 주력하는 한편, 모은 자료를 정리해 원주독립운동사 발간을 추진했다. 원주시와 연세대 원주캠퍼스의 지원으로 오영교·왕현종 교수 등이 집필한 원주독립운동사가 2005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원주독립운동사 연구의 거점이 된 항일독립운동 원주기념사업회 창립과 광복회 원주연합지회 설립에도 앞장섰다. 특히 항일독립운동 원주기념사업회에서는 연구위원이자 사무국장을 겸하면서 독립운동가 발굴과 원주의 항일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추진, 지역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가치관 형성에 기여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였다. 그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국가보훈처장 표창을, 2015년에는 의암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원주지역 독립운동가 발굴에 대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그 누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작했을 뿐"이라고 밝힌 윤 부회장은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면서 의병운동과 만세운동은 물론, 민주화운동까지 굵직한 변곡점마다 원주는 불의에 꺾이지 않는 저항정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원주시민이라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중심에 원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고증되지 않은 수많은 애국지사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 그는 "2006년 원주문화원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독립운동사 연구에 조금은 소홀했던 측면이 없지 않다"며 아쉬움도 밝혔다.

퇴임 후 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라는 윤 부회장은 "독립운동사 연구와 애국지사 발굴은 특정인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라며 "잊혀진 역사를 찾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뜻 있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