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정농단으로 인한 어지러운 시국으로 한해를 마감하면서 정유년 새해에는 희망이 가득하길 기원했지만 탄핵정국 속에서 강대강 대치, 패권주의 정치, 국민 분열은 나날이 더해가고 있다.
 

 이렇게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원인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 2월 진행된 '중천 김충열 선생 기념강연회'에서 마음에 꽂히는 가르침을 만났다. 중천 선생은 '유가윤리 강의'에서 사회의 기강을 세우는 힘으로 예·의·염·치(禮義廉恥) 네 가지 기강을 제시하며, 특히 마지막 치(恥)를 강조하였다.

 중천 선생은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요,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기를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잘잘못에 대해 누구보다도 자신이 먼저 알고 느낄 줄 안다. 부끄러움이란 양심의 자기 정화의 표현이다." 라고 말하였다.
 

 2월 27일 탄핵 심판 최종변론이 있었던 헌재 대심판정에서 국회측 대리인 황정근 변호사는 "박 대통령이 아직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며 "부끄러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때 제대로 알고 고칠 수 있다"라고 변론을 마쳤다.
 

 얼마 전 원주시 시의원이 친척 여동생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7년의 중형이 선고되었고, 재판이 이루어지는 1년이 넘도록 의원직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수백만원의 시의원 수당과 의정활동비까지 지급되어 시민단체가 일어나 제명을 요구하였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원이 이렇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투표를 행사한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일부 위정자들의 잘못된 모습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을 보면 점점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뉴스를 볼 때마다 돈 때문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 부모가 어린 아이를 죽여 유기한 사건 등 후안무치와 뻔뻔함이 도를 넘는 사건을 수시로 접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재산싸움으로 부모자식, 형제남매가 의를 끊는 경우, 내 자식을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경우, 오직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행동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중천 선생이 말했듯이 사람은 신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살지만 부끄러움을 느끼며 양심에 의한 자기 교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러움'이 사라질 때 개인의 인격도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도 파괴되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다.

 시인 윤동주가 투철한 독립투사는 아니었다. 저항과 독립에 대한 의지는 강했으나 독립을 위해 무장하고 싸우지 못하고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윤동주는 그런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시에 담겨진 조국을 향한 마음과 시인의 고뇌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솔직한 감정으로 표현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시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일 외교관계에서 가장 해결되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도 살펴보면, 위안부할머니들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말한다. 결국 일본이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거기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침략 과오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그 뻔뻔함에 분노하고 위안부할머니들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것이다.

 맹자의 사단설 중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보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의로움의 극치(羞惡之心 義之端也)이며,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는 말이 있다. 이는 수오지심이 곧 사람됨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사람됨의 기본, 도덕적 자각의 원천인 '부끄러움'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인격을 회복하고 사회와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다.

류희경 중천철학재단 사무국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