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업무 18년 "웃음을 배달합니다"
원주우체국 유일 여성집배원…절도범 검거·보이스피싱 방지 한 몫

"방문할 때마다 식사에 김장까지 챙겨주시는 분들 덕분에 고된 일에도 보람을 느끼며 일 할 수 있어요"

원주우체국에 소속된 120여명의 집배원들은 눈·비가 내리는 궂은 날에도 매일 원주 곳곳을 누비며 반가운 소식이 담긴 우편물을 배달한다.

하루 700통에서 많게는 1천400통을 배달해야 하는 집배업무는 남자들도 버티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 이들 중 유일한 여자 집배원인 이연숙(53) 씨는 올해로 18년째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원주를 누비고 있다. 

이 씨가 집배원 업무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히 우체국으로 우유배달을 온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여자 집배원은 생소하던 시절, 이 씨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여자 집배원들을 보고 집배원 모집에 지원하게 된다.

오토바이를 못타는 다른 여직원들과 달리 젊은 시절부터 신문배달, 쥬스배달, 학원차 운행까지 운전에는 자신 있었던 이 씨는 곧바로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 업무를 시작했다. 

그녀가 간절하게 집배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어릴 적 펜팔을 했던 추억 때문이었다. 중학교 시절 글씨연습을 하기위해 시작했던 펜팔은 처녀 때 까지 이어졌다.

이 씨는 "10년 넘게 대한민국 팔도를 모두 거쳐 가며 펜팔을 주고받았다"며 "편지를 주고받는 즐거움을 알기에 직접 배달해서 전해주는 일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30대 중반에 시작한 일이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젊은 신입사원 못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마을 곳곳 주민들을 만난다는 설레임과 즐거움이 컸다. 

신림, 흥업 등 외곽지역을 주로 담당했던 그녀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살가운 딸이나 다름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소소한 심부름거리를 맡아했으며 일일이 안부를 묻는 딸 역할을 했다. 

집배업무를 하며 시골동네 차 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었던 이 씨가 우연히 도둑을 붙잡은 일도 있었다. 그녀는 며칠동안 마을을 돌아다니던 낯선 차를 수상하게 여겨 차량번호를 외워두었는데 주민들의 도난제보에 기억하고 있던 번호로 절도범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집집마다 들러 보이스피싱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던 이 씨 덕분에 실제로 전화를 받은 어르신들의 금전피해를 막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그녀에 대한 고마움으로 농산물 등을 챙겨줬으며, 그녀가 오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 씨 또한 어르신들을 위해 읍내에서 찐빵이나 먹거리 등을 전달하며 감사한 마음에 보답했다. 

그녀는 "방문할 때마다 식사에 김장까지 챙겨주시는 분들 덕분에 고된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일 할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받은 보너스는 모두 어르신들 먹거리나 심부름 비용으로 사용했지, 나를 위해 한 푼도 써본 적이 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날씨·계절과 무관하게 항상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일인 만큼 잦은 부상을 겪어야 했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발목이 부러지기도 했으며, 다리와 얼굴에 마비증상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휴식기를 갖고 복귀한 그녀는  집배원으로 복귀한지 이제 두달 남짓 됐다. 아직 성치 않은 몸이라 다른 직원들보다 배달속도가 늦고 우편물 분리작업도 서툴다.

하지만 팀 동료들은 그녀를 대신해 우편물을 분류해주거나 배달이 밀릴 경우, 남은 우편물을 함께 배달해 주는 등 세심하게 챙겨준다. 이 씨는 "몸이 성치 않은 나를 위해 업무를 분담해주는 동료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며 "서로를 챙겨주는 동료애 덕분에 더욱 힘내서 일할 수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집배원으로 근무하고 싶다는 이 씨는 "지금은 원주에서 유일한 여자 집배원으로 활동하지만 즐겁게 근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여자 집배원이 많이 늘어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수희 기자  nmpry@wonjutoday.co.kr